標題 大森:羅漢寺與五百羅漢

  • 島根
類別:
史蹟、城蹟 村落、街道
媒體用途種類:
網頁
字數:
250以下
編寫年度:
2019
地區協議會名稱:
iwamiginzantagengokyogikai

Omori: Rakanji Temple and the 500 Rakan

Rakanji Temple, built to honor those who lost their lives in the mines of Iwami Ginzan, was founded in the belief that praying to the rakan (Sanskrit: arhat) would help the families of the deceased to find peace. In Buddhism, arhats are those who have attained nirvana, or spiritual enlightenment.


Construction on the temple began in 1741 under the patronage of Tayasu Munetake (1716–1771), the central government’s representative at Iwami Ginzan, who was the second son of the shogun Tokugawa Yoshimune (1684–1751). It took 25 years and vast funding to complete, but the result is impressive: three caves dug into the mountainside, filled with more than five hundred stone statues of the rakan, each with an individual posture and facial expression. Local people would search for a statue that resembled their deceased family member. The backs of these statues were marked with the names of the donors, who ranged from local believers to Tayasu’s family members and ladies of the shogun’s household in Edo (present-day Tokyo).


Today, visitors can cross the arched stone bridges that date back to the temple’s founding and enter two of the caves, which house 250 statues each. While Rakanji Temple is also known as the “500 Rakan,” this was never meant as an exact figure. The actual number of statues used to be significantly higher, but the centuries have taken their toll, leaving us with the current 500 rakan.


大森伝建・五百羅漢


羅漢(梵語:アルハット)は、涅槃に達し、禅宗で尊崇される仏弟子をいいます。石見銀山の鉱山で亡くなった人々を祀る羅漢寺は、羅漢に祈れば亡くなった鉱夫の魂を救い、その家族に平安がもたらされるという信仰に基づいて建てられました。羅漢寺の創建は、1741年に、将軍徳川吉宗(1684年~1751年)の次男で、当時石見銀山で奉行を務めた田安宗武(1716年~1771年)の庇護を受けて開始されました。羅漢寺の完成には25年の歳月と莫大な費用を要しましたが、その結果、素晴らしい寺が出来上がりました。山の中腹に3つの洞窟が掘られ、数百体の羅漢の石像が安置されました。石像は、それぞれ姿勢と表情が異なるため、参拝者は亡くなった家族に似た石像を見つけることができました。これらの石像の背面には、地元の信徒から田安氏一族や江戸(現在の東京)の女官に至るまで、寄進者の名前が記されていました。現在、参拝者は寺院創建時からあるアーチ形の石橋を渡り、それぞれ250体と251体の像が安置されている洞窟に入ることができます。羅漢寺は「五百羅漢」とも呼ばれていますが、これは正確な数字を意味す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実際の像の数はかつてはかなり多かったものの、何世紀もの間に多くの被害を受け、現在残っている羅漢は500体です。


大森:罗汉寺与五百罗汉


罗汉寺为纪念石见银山矿难丧生者而建,因为人们相信向罗汉(梵语称“阿罗汉”)祈祷,能够帮助逝者的家人获得安宁。在佛教中,阿罗汉指的是得证涅槃或已开悟的佛教徒。

寺院于1741年动工修建,资助者田安宗武(1716-1771)是幕府将军德川吉宗(1684-1751)的次子,当时代表幕府出任“代官”(地方最高行政长官)。罗汉寺前后耗时25年才最终完工,耗资甚巨,但成果辉煌。在依山开凿出的3个洞窟里,安放着总计500多尊罗汉石像。因每尊的姿态、表情都各不相同,本地人会来到这里寻找与已故家人相似的雕像。其实,最早创作这五百罗汉像的石匠在此前并未见过真正的罗汉像,据说他们为此专程前往江户(今东京)的增上寺,请出了来自中国的秘宝罗汉图参拜观摩,这才回来依样完成雕刻。石像背后刻着捐助者的名字,其中有本地信徒,也有田安家族成员,甚至还有远在江户的幕府将军府女眷。

穿过一座与寺院同样古老的拱形石桥,可进入其中的两个洞窟,每一个洞窟里面都有250尊罗汉像。罗汉寺素以“五百罗汉”著称,不过,这向来都不是确切数字。过去,实际的罗汉像数量远多于此,只是数百年来岁月流逝,多有损毁,最终留下了眼前的这500尊罗汉。

오모리 오백나한


나한이란 불교에서 가장 높은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자를 말합니다. 나한께 기도를 드리면 죽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고 가족들에게도 평안이 찾아온다는 신앙에 뿌리를 둔 오모리의 라칸지 절(나한사)은 이와미 은광의 채굴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라칸지 절은 에도 막부의 제8대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무네(1684~1751)의 차남이자, 당시 이와미 은광에서 부교(무가 시대에 행정 사무를 담당했던 장관급 관리)를 역임했던 다야스 무네타케(1716~1771)의 후원을 받아 1741년에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라칸지 절이 완공되기까지 25년이라는 세월과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었지만, 그 결과 훌륭하고 인상적인 모습의 사찰이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산 중턱에 만들어진 세 동굴에는 수백 개의 석조 나한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자세와 표정이 각각 다른 석상들을 보며 참배객들은 죽은 가족과 닮은 모습의 석상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이 석상들의 뒤편에는 지역의 신도부터 다야스 씨족이나 에도(현재의 도쿄)의 궁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부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현재 참배객들은 사찰이 창건된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아치형의 돌다리를 건너 각각 250개와 251개의 불상이 안치되어 있는 두 동굴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라칸지 절은 ‘오백나한’이라고도 불리지만 정확히 500이라는 수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는 훨씬 더 많은 불상이 존재했지만 수세기를 거치는 동안 많은 불상이 파괴되면서 현재 남아있는 나한상이 500개입니다.

大森:羅漢寺與五百羅漢


羅漢寺是為紀念石見銀山礦難喪生者而建,因為人們相信向羅漢(梵語稱「阿羅漢」)祈禱能夠幫助逝者的家人獲得安寧。在佛教中,阿羅漢指的是得證涅槃或已開悟的佛教徒。

在田安宗武(1716-1771)的贊助下,寺院於1741年動工修建。田安宗武是幕府將軍德川吉宗(1684-1751)的次子,當時擔任幕府指派的「代官」(地方最高行政長官)一職。羅漢寺前後耗時25年完工,耗資甚巨,但成果輝煌。依山開鑿出的3個洞窟安放著總計500多尊羅漢石像,尊尊姿態不同、表情各異,因此本地人會來此尋找與已故家人相似的雕像。其實,最早創作這五百羅漢像的石匠在此前並未見過真正的羅漢像,據說他們為此專程前往江戶(今東京)的增上寺,請出來自中國的秘寶羅漢圖參拜觀摩,這才回來依樣完成雕刻。石像背後刻著贊助者的名字,其中有本地信徒,也有田安家成員,甚至還有遠在江戶的幕府將軍府女眷。

穿過一座與寺院同樣古老的拱形石橋,可進入其中的兩個洞窟,每一個洞窟裡面都有250尊羅漢像。羅漢寺素以「五百羅漢」著稱,不過,這向來都不是確切數字。過去,實際的羅漢像數量遠多於此,只是數百年來歲月流逝,難免多有損毀,最終留下了眼前這500尊羅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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