標題 高砂町與北前船

  • 兵庫
類別:
史蹟、城蹟
媒體用途種類:
網頁
字數:
251-500
編寫年度:
2023
地區協議會名稱:
takasagoshi kankoshisetsu tagengokakyogikai

Takasago-cho and the Kitamaebune


In the middle of the Edo period (1603–1867), cargo ships began sailing from Osaka to Hokkaido on a route starting from the Seto Inland Sea, then going through the Kanmon Strait separating Honshu and Kyushu and up along the Sea of Japan coast to avoid the strong currents of the Pacific Ocean.


In the Meiji era (1868–1912), the number of kitamaebune (northbound ships) plying this route increased quite rapidly. They carried goods on both their outbound and return legs, unlike the vessels that transported daily necessities from the Kansai region to Edo (present-day Tokyo) along the Pacific coast. While the Edo-bound ships had empty holds on their return trips, which limited profits, the kitamaebune made multiple calls along the Sea of Japan coast, to maximize their income. The merchant sailors sold anything that would turn a profit and bought anything considered a bargain, which they would sell at the next stop.


Takasago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development of kitamaebune shipping, thus advancing the growth of regional trade. Takasago’s coastal location, facing Harima Bay on the Seto Inland Sea, made it a useful port of call. Many shipowners and merchant sailors built homes there due to the town’s easy access to Osaka, the start of the kitamaebune route.


The invention of Matsuemon canvas by Takasago-born businessman and inventor Kuraku Matsuemon (1741–1812) had an enormous impact on the shipping industry of the time. As it was far more durable and flexible than the woven or light cotton grass sails in use up until then, Matsuemon canvas greatly improved the reliability and performance of sailing ships.


Due to the significant contributions Takasago has made to the development of Japan’s domestic trade, many of its buildings are recognized as Japan Cultural Heritage Sites.

高砂町と北前船


 江戸時代(1603-1867)の中頃、貨物船は瀬戸内海を起点に、本州と九州を隔てる関門海峡を通り、太平洋の強い潮流を避けて日本と韓国の間の海の沿岸を上る航路で大阪から北海道へ向かうようになりました。


 明治時代(1868-1912)、この航路を通る北前船(北行きの船)の数は急速に増加しました。北前船は、関西から太平洋沿岸の江戸(現在の東京)へ生活必需品を運ぶ船とは異なり、往路も復路も物資を運びました。江戸行きの船が復路は何も積まずに帰るため収益がかぎられていたのに対し、北前船は多くの港に立ち寄り、収入を最大化しました。船の商人たちは、利益が出るものは何でも売り、掘り出し物と思われるものは何でも買い、次の寄港地で売りました。


 高砂地域は北前船の発展に重要な役割を果たし、地域貿易の発展を促しました。高砂地域は瀬戸内海の播磨灘に面していたため、寄港地として重宝されました。北前船航路の起点である大坂へのアクセスも良いことから、多くの船主や商船員が高砂地域に住居を構えました。


 そして高砂地域出身の実業家・工楽松右衛門(1741-1812)が発明した松右衛門帆は、当時の海運業に大きな影響を与えました。松右衛門帆は耐久性があり、それまで使われていた葦や軽い木綿で作られた帆よりもはるかに丈夫で柔軟だったため、帆船の信頼性と性能を大きく向上させました。


 日本の国内貿易の発展に大きく貢献した高砂地域では、多くの建造物が日本文化遺産に認定されています。

高砂町与北前船


江户时代(1603-1867)中期,被称为“北前船”的货船从大坂(今大阪)出发,跨越濑户内海,穿过分隔本州与九州的关门海峡,避开强大的太平洋洋流,沿着日本海海岸北上,开往北海道。

到了明治时代(1868-1912),北前船数量剧增,航路繁忙起来。当时还有一条沿太平洋海岸从关西开往江户(今东京)的航线,这条航线上的货船主要向江户运送日常必需品,返程时往往空载,所以盈利有限。而北前船为了最大限度地增加收益,往返都会运载货物,并在日本海沿岸逐站停靠,进行交易。商船水手们买卖一切能够换取利润的货品,随时采购停靠地的低价产品,带到下一站去销售。

高砂在北前船航运发展中扮演着重要的角色,对区域贸易发展贡献巨大。高砂面朝濑户内海的播磨滩,得天独厚的地理位置使它成为了一处重要的停泊港。北前船航线的起点是大坂,从高砂往返十分便利,因此,许多货船船主和水手都在这里建造房舍,安家落户。

高砂本地的实业家、发明家工乐松右卫门(1741-1812)发明了“松右卫门帆”,对当时船运业的发展产生了巨大影响。与此前用苇草或薄棉布制成的船帆相比,松右卫门帆制成的船帆更为柔韧、结实,因而极大地提升了船只的性能及可靠性。

鉴于高砂町对日本国内贸易做出的巨大贡献,这里的许多建筑都被认定为日本文化遗产。

다카사고초와 기타마에부네(北前船)


 에도 시대(1603~1867) 중반, 화물선은 세토 내해를 기점으로 혼슈와 규슈를 가르는 간몬 해협을 지나, 태평양의 거센 조류를 피해 일본과 한국 사이에 있는 바다 연안을 오르는 항로를 이용해 오사카에서 홋카이도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메이지 시대(1868~1912)에 이 항로를 지나는 기타마에부네(北前船, 북쪽으로 향하는 배)의 수는 급속히 증가했습니다. 기타마에부네는 간사이 지방에서 태평양 연안의 에도(현재의 도쿄)로 생활필수품을 운반하는 선박과는 달리, 갈 때와 돌아올 때도 모두 화물을 운반했습니다. 에도로 가는 선박이 돌아올 때는 아무것도 싣지 않고 돌아왔기 때문에 수익이 한정적이었던 반면, 기타마에부네는 많은 항구에 들러 수익을 극대화시켰습니다. 배의 상인들은 이익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팔았고, 싸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이든 사들여 다음 기항지에서 팔았습니다.


 다카사고 지역은 기타마에부네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지역 무역의 발전을 촉진했습니다. 다카사고 지역은 세토 내해의 하리마탄에 접해 있었기 때문에 기항지로서 요긴하게 이용되었습니다. 기타마에부네 항로의 기점인 오사카까지 접근성도 좋아, 많은 선주와 상선원이 다카사고 지역에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또한, 다카사고 지역 출신 사업가인 구라쿠 마쓰에몬(1741~1812)이 발명한 마쓰에몬 범포는 당시 해운업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마쓰에몬 범포는 내구성이 뛰어나고 이전까지 사용되었던 갈대나 가벼운 무명으로 만들어진 돛보다 훨씬 튼튼하고 유연했기 때문에, 범선의 신뢰성과 성능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일본 국내 무역 발전에 크게 공헌한 다카사고 지역에서는 많은 건축물이 일본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습니다.

高砂町與北前船


在江戶時代(1603-1867)中期,被稱為「北前船」的貨船從大坂(今大阪)出發,跨越瀨戶內海,穿過分隔本州與九州的關門海峽,避開強大的太平洋洋流,沿著日本海海岸北上,開往北海道。

到了明治時代(1868-1912),北前船的數量激增,航路繁忙起來。當時還有一條沿太平洋海岸從關西開往江戶(今東京)的航線,這條航線上的貨船主要向江戶運送日常用品,返程常常空載,所以利潤有限。而北前船為了實現收益最大化,不但往返都會運載貨物,且在日本海沿岸逐站停靠,商船水手們買賣一切能夠換取利潤的貨品,並隨時採購停靠地的低價產品,帶到下一站銷售。

高砂在北前船航運發展中扮演了重要角色,對區域貿易發展貢獻巨大。高砂面朝瀨戶內海的播磨灘,得天獨厚的地理位置令它成為了一處重要的停泊港。北前船航線的起點是大坂,從高砂町往返十分便利,許多貨船船主和水手都在這裡建造房屋,安家落戶。

高砂當地的企業家兼發明家工樂松右衛門(1741-1812),發明了「松右衛門帆」。比起之前用葦草或薄棉布製成的船帆來,使用這種帆布製成的船帆要柔韌、結實得多,極大地提升了帆船的性能和可靠性,對船運業發展產生了巨大影響。

由於高砂對日本國內貿易做出了巨大貢獻,這座城市裡的許多建築都被認定為日本文化遺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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