タイトル 日本銀行旧小樽支店

  • 北海道
ジャンル:
史跡・城跡 体験アクティビティ
媒体利用区分:
Webページ
ワード数:
250以下
作成年度:
2023年
地域協議会名:
小樽市日本遺産推進協議会

Bank of Japan Otaru Museum


The Bank of Japan’s Otaru Branch was designed to reflect the wealth of the city and the financial power of the national bank. By the mid-1920s, some twenty-five banks were operating in Otaru, compared with thirteen banks in Hokkaido’s capital, Sapporo. Otaru was the gateway to Hokkaido in the late nineteenth century; goods and settlers arrived through the port, and commodities such as grain were shipped to various destinations in Honshu, as well as Russia and Europe. The banks facilitated financial transactions and international currency exchange, for the growing port city.


Currency reform

Under the regime of the Tokugawa shoguns (1603–1867), gold and silver coinage was used for international trade. Unequal trade treaties between the shogunate and foreign powers in the mid-nineteenth century undervalued Japanese currency and large quantities of gold were taken out of the country as a result. In response, the Bank of Japan was founded in 1882 to issue banknotes and reform Japan’s monetary and financial systems. It came a year after the Meiji government (1868–1912) introduced the yen as the official currency. 


In 1885, the Bank of Japan issued its first notes, which were guaranteed in exchange for silver. Then, in 1887, Japan followed many Western countries in adopting gold as the standard for its currency. A branch of the Bank of Japan opened in Otaru in 1893 to facilitate financial transactions in Hokkaido. As well as handling the storage, receipt, and circulation of treasury funds, the Otaru Branch, as it became known, purchased gold panned in Hokkaido to build up its gold reserves. 


Symbols of success

A new building for the Bank of Japan in Otaru was constructed over three years from 1909 to 1912. It was designed in the Renaissance Revival style by Tatsuno Kingo (1854–1919), and his protégé Nagano Uheiji (1867–1937). Tatsuno was one of Japan’s most famous architects at the time and is best remembered for designing the Bank of Japan Head Office (1896) in Tokyo’s Nihonbashi and the red brick Marunouchi building of Tokyo Station (1914). He was one of the first students of British architect Josiah Conder (1852–1920) at the Imperial College of Engineering (now the Faculty of Engineering at the University of Tokyo). 


The two-story Otaru Branch building used new construction methods, including a steel-frame structure and concrete-coated floors and roof for fire prevention. Steel roof trusses made it possible to create a large open space for the banking hall without support pillars. A mezzanine gallery overlooks the banking hall, allowing bank managers to observe the activity below. Throughout the interior, Tatsuno incorporated the symbol of the Bank of Japan—a stylized yen motif. The circular design is printed on Japanese banknotes to this day.


The building’s brickwork exterior is covered with cement to resemble stone and protect the bricks from rain and snow. The building has four domes along the roof on the north side, and a four-story watchtower overlooking Otaru Port on its southeast corner.


In operation until 2002, the bank was restored and opened to the public as the Bank of Japan Otaru Museum in 2003. Exhibits include scale models of Otaru’s financial district and the original bank vault. Admission is free.

日本銀行舊小樽支行金融資料館


19世紀晚期的小樽是進入北海道的門戶,貨物和移民都從這個港口上岸,糧食穀物等商品也都在這裡裝船後發往本州各地,甚至俄羅斯或歐洲。在這座發展迅猛的港口城市裡,各家銀行為小樽的金融交易和國際貨幣兌換提供了助力。1920年代中期時,小樽已有大約25家銀行,相對於只有13家銀行的北海道首府札幌,金融業更加發達。從日本銀行舊小樽支行的設計便能看出這座城市的富庶,以及這間國家銀行實力的雄厚。


貨幣改革

在德川幕府時代(1603-1867),日本採用金、銀幣進行國際貿易。到了19世紀中葉,由於幕府和外國列強簽訂了不平等的貿易協定,導致日本貨幣貶值,大量黃金流失。為了應對這一局面,政府在1882年成立了日本銀行,負責發行紙幣,同時也對日本貨幣和金融體系進行改革。此時正是明治政府(1868-1912)確定日圓(円)為官方貨幣差不多10年後。

1885年,日本銀行發行了第一套紙幣,以白銀作為交易擔保。不久之後又跟隨西方腳步,在1887年將日圓的貨幣本位改為黃金。到了1893年,為了促進北海道的金融交易,日本銀行在小樽開設了支行。隨著小樽支行聲名鵲起,在處理財政資金的存儲、接收和流通以外,小樽支行還購買了北海道當地開採的金子,建立起了自己的黃金儲備。


成功的象徵

1909年至1912年,日本銀行小樽支行花費了3年時間建造了一座文藝復興建築風格的新樓,設計師是當時日本最著名建築師之一辰野金吾(1854-1919)和其弟子長野宇平治(1867-1937)。辰野金吾是英國建築師喬賽亞·康德(Josiah Conder, 1852-1920)在帝國工科大學(今東京大學工學部)的第一屆學生之一,位於東京日本橋的日本銀行總部(1896年)和東京站的丸之內紅磚大樓(1914年)都是他的代表作品,兩者皆已被指定為國家重要文化財產。

兩層樓的小樽支行新樓採用了全新的建造方法,像是鋼筋結構、防火混凝土的地面和屋頂。鋼結構桁架能夠支撐大跨度的屋頂,不需要再添加任何立柱,為銀行大廳留出了開闊的空間;夾層走廊可俯瞰大廳,方便銀行經理們隨時了解廳內情況;在內飾上,辰野金吾大量使用了日本銀行的標誌:一個日文「円」字的變形圖案,代表日圓。今天的日圓紙幣上依然保留著這個圓形標記。

建築的磚結構外牆上覆蓋了一層水泥,不但能防止雨雪侵蝕牆磚,還可以模擬出石材效果。建築北側的屋頂上排列著4個小拱頂,東南角有一座四層的瞭望塔,可俯瞰小樽港。

日本銀行在這裡一直營業到2002年。2003年,這處建築經修葺改造為「日本銀行舊小樽支行金融資料館」後重新對外開放。現在館內展品包括小樽金融街等比例模型以及原銀行金庫等。金融資料館向民眾免費開放。


日本銀行舊小樽支行金融資料館

開館時間:夏(4月~11月)9:30~17:00,冬(12月~3月)10:00~17:00

閉館日:週三(如遇節假日順延),元旦放假期間

日本银行旧小樽支行金融资料馆


日本银行旧小樽支行的设计彰显了这座城市的富庶以及这间国家银行的金融实力。到20世纪20年代中期时,小樽已有大约25家银行,当时北海道的首府札幌也仅有13家。19世纪晚期的小樽是进入北海道的门户,无论货物还是移民都从本地港口登岸,粮食谷物等商品也都在这里装船,再发往本州各地,甚至俄罗斯和欧洲。在这座发展迅猛的港口城市里,各家银行为小樽的金融交易和国际货币兑换提供着助力。


货币改革

德川幕府时代(1603-1867),日本采用金、银币进行国际贸易。到了19世纪中叶,幕府和外国列强签订了不平等的贸易协定,导致日本货币贬值,大量黄金流失。为了应对这一局面,日本银行于1882年成立,负责发行纸币,并对日本货币和金融体系进行改革。而此时差不多是在明治政府(1868-1912)确定日元(円)为官方货币的10年后。

1885年,日本银行以白银作为交易价值的保障,发行了第一套纸币。很快,日本跟随西方诸国脚步,在1887年将日元的货币本位改为黄金。1893年,为了促进北海道的金融交易,日本银行在小樽开设支行。随着小樽支行闻名于世,该行在处理财政资金的存储、接收和流通以外,还购买了北海道本地开采的金子,建立起了自己的黄金储备。


成功的象征

1909年至1912年,日本银行小樽支行共花费三年时间建造了公司新楼。这是一座文艺复兴风格的建筑,由辰野金吾(1854-1919)和弟子长野宇平治(1867-1937)共同设计。辰野金吾是当时日本最著名的建筑师之一,也是英国建筑师乔赛亚·康德(Josiah Conder, 1852-1920)在帝国工科大学(今东京大学工学部)的首届学生之一。位于东京日本桥的日本银行总部(1896年)和东京站的丸之内红砖大楼(1914年)都是他的代表作品,两者均已被指定为国家重要文化财产。

小樽支行新楼高两层,采用了全新的建造方法,例如钢筋结构、防火混凝土的地面和屋顶。钢结构桁架能够支撑大跨度的屋顶,无需添加立柱,因此为银行大厅留出了开阔的空间。夹层走廊可俯瞰大厅,方便银行经理们随时了解厅内情况。而在内饰上,辰野金吾大量使用了日本银行的标志:一个日文“円”字的变形图案,代表日元。今天的日元纸币上依然保留着这个圆形标记。

建筑的砖结构外墙上覆盖着一层模拟石材效果的水泥,能防止雨雪侵蚀墙砖。建筑北侧的屋顶上排列着四个小拱顶,东南角有一座四层的瞭望塔,可俯瞰小樽港。

日本银行在这里一直营业到2002年。2003年,这座建筑经修葺后改造为“日本银行旧小樽支行金融资料馆”,重新对公众开放。馆内展品包括小樽金融街等比例模型和原银行金库等。金融资料馆免费开放。


日本银行旧小樽支行金融资料馆

开馆时间:夏(4月~11月)9:30~17:00,冬(12月~3月)10:00~17:00

闭馆日:周三(如遇节假日顺延),元旦放假期间

일본은행 구 오타루 지점


 일본은행 오타루 지점은 도시의 부와 국영 은행의 재력을 보여주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1920년대 중반에 은행 수는 홋카이도의 청사가 있는 삿포로에 13개 은행이 있었는 데 비해 오타루 시내에는 약 25개 은행이 있었습니다. 오타루는 19세기 말에 홋카이도의 현관이 되었습니다. 즉, 화물과 이주자는 먼저 오타루 항구를 통해 오타루에 도착하고, 곡물 등 식료품은 러시아와 유럽으로 수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혼슈 곳곳으로 운반되었습니다. 계속 성장하는 이 항구 도시를 위해 일본 은행은 금융 거래와 국제 통화 교환을 간소화했습니다.


화폐 개혁

 도쿠가와 막부(1603~1867) 하에서 국제 무역에서는 금화와 은화가 사용되었습니다. 19세기 중반의 막부와 외국 세력 간의 불평등 통상 조약으로 일본의 통화가 과소평가되었으며, 그 결과 대량의 금이 해외로 유출되었습니다. 이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1882년에 일본은행이 설립되었고, 지폐 발행과 일본의 통화 및 금융 제도의 개혁이 이루어졌습니다. 메이지 정부(1868년~1912년)가 공식 통화로 ‘엔’을 도입한 지 11년 후의 일이었습니다.


 1885년에 일본은행이 첫 지폐를 발행했고, 은은 지폐와의 교환이 보증되었습니다. 그 후 1887년에 일본은 많은 서양 국가들의 뒤를 이어 화폐의 기준으로 금을 채택했습니다. 홋카이도에서의 금융 거래를 추진하기 위해 1893년에 일본은행의 지점이 오타루에 개설되었습니다. 오타루 지점은 재정 자금의 보관, 수령, 유통을 취급할 뿐만 아니라 홋카이도에서 채굴된 금을 구입하여 금 비축량을 늘렸습니다.


성공의 상징

 오타루의 일본은행 신사옥은 1909년부터 1912년까지 3년에 걸쳐 건설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다쓰노 긴고(1854년~1919년)와 그의 제자 나가노 우헤이지(1867년~1937년)가 설계한 르네상스 리바이벌 양식의 건물이었습니다. 다쓰노는 그 당시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 중 한 사람이었으며, 대표작으로는 도쿄 니혼바시에 있는 일본은행 본점(1896년)과 붉은 벽돌 구조의 도쿄역 마루노우치 역사(1914년)가 있습니다. 다쓰노는 고부 대학교(현재의 도쿄 대학 공학부)에서 영국 건축가인 조시아 콘도르(Josiah Conder, 1852년~1920년)가 지도한 1기생 중 한 명이었습니다.


 2층 건물인 오타루 지점 사옥에는 방화 대책으로 철골 구조를 도입하고 바닥과 지붕에 콘크리트를 사용하는 등 새로운 공법을 사용했습니다. 지붕을 지탱하는 뼈대도 철골로 되어 있어 버팀목을 사용하지 않아도 은행 홀의 넓은 개방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이층의 회랑에서는 은행 홀을 볼 수 있게 되어 있어 이곳에서 은행 지점장이 아래층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쓰노는 내부 곳곳에 일본은행의 상징인 한자 ‘日(날 일)’의 고대 서체를 모티브로 한 마크를 도입했습니다. 이 원형 마크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지폐에 인쇄되어 있습니다.


 사옥의 벽돌 외관은 돌과 비슷한 시멘트로 덮여 있어 비와 눈으로부터 벽돌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 건물에는 북쪽 지붕을 따라 4개의 돔과 남동쪽 모퉁이에 오타루 항구를 바라볼 수 있는 4층짜리 망루가 달려 있습니다.


 2002년에 은행으로서의 영업은 종료했으며, 이후 개수되어 2003년에 ‘일본은행 구 오타루 지점 금융자료관’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전시물 중에는 오타루 금융 지구의 축척 모형, 실제로 사용되었던 금고실 등이 있습니다. 입장은 무료입니다.

日本銀行旧小樽支店


 日本銀行小樽支店は、町の富と国営銀行の財力を示すために設計されました。1920年代半ばには、銀行の数は北海道の庁舎がある札幌の13行に対し、小樽市内はおよそ25行でした。小樽は、19世紀の終わりには北海道の玄関口となっていました。つまり、貨物や移住者はまず小樽港から小樽に到着し、穀物などの食料はロシアやヨーロッパへの輸出と同様に本州のあらゆる場所へ運ばれていきました。この成長を続ける港町のために、日本銀行は金融取引と国際通貨交換を簡易化していました。


通貨改革

 徳川幕府(1603–1867)の下、国際貿易では金貨と銀貨が使用されていました。19世紀半ばにおける幕府と外国勢力の間の不平等な通商条約により、日本の通貨が過小評価され、その結果、大量の金が海外に流出しました。この事態に対応するため、1882年に日本銀行が設立され、紙幣の発行と日本の通貨・金融制度の改革がなされました。明治政府(1868年–1912年)が公式通貨として「円」を導入した11年後のことでした。


 1885年に日本銀行が最初の紙幣を発行し、銀は紙幣との交換が保証されていました。その後、1887年に、日本は多くの西洋諸国の後に続き、貨幣の基準として金を採用しました。北海道での金融取引を推し進めるため、1893年、日本銀行の支店が小樽に開設されました。小樽支店は、財政資金の保管・受領・流通を取り扱うだけでなく、北海道で採掘された金を購入し、金の備蓄を増やしました。


成功の象徴

 小樽の日本銀行の新社屋は1909年から1912年まで、3年かけて建設されました。これは、辰野金吾(1854年–1919年)と彼の弟子、長野宇平治(1867年-1937年)が設計した、ルネッサンス・リバイバル様式によるものでした。辰野はその当時、日本でもっとも有名な建築家の1人であり、代表作として東京日本橋にある日本銀行本店(1896年)や赤レンガ造りの東京駅丸の内駅舎(1914年)があります。辰野は、工部大学校(現在の東京大学工学部)で、イギリスの建築家であるジョサイア・コンドル(1852年–1920年)が指導した一期生のうちの1人でした。


 2階建ての小樽支店の社屋には防火対策として、鉄骨構造を取り入れ、床や屋根にコンクリートを使うなど、新しい工法を用いました。屋根を支える骨組みも鉄骨になったことにより、支柱を使わず、銀行ホールの広いオープンスペースを創り出すことが可能となりました。中2階の回廊からは銀行ホールを見渡せるようになっており、ここから銀行支店長が階下の様子を見ることができました。辰野は内装全体を通して、日本銀行のシンボルである、漢字の「日(イル)」の古代書体をモチーフにしたマークを取り入れました。この円形のマークは今日に至るまで日本の紙幣に印刷されています。


 社屋の煉瓦造りの外装は石に似せたセメントで覆われ、雨や雪から煉瓦を守っています。この建物には北側の屋根に沿って4つのドームと、南東の角に小樽港を見渡せる4階建ての望楼が取り付けられています。


 2002年で銀行としての営業は終了し、その後、改修されて2003年に「日本銀行旧小樽支店金融資料館」として一般公開されました。展示物の中には、小樽の金融地区の縮尺模型、実際に使われていた金庫室などがあります。入場は無料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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