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Kaga Domain Workshop (Osaikusho)

  • Ishikawa
Topic(s):
Regional Specialties
Medium/Media of Use:
Web Page
Text Length:
251-500
FY Prepared:
2022
Associated Tourism Board:
Ishikawa Crafts and Cultural Heritage Digital Contents Promotion Council

加賀藩御細工所


 加賀藩御細工所(おさいくしょ)は、16 世紀後半に加賀藩(現在の石川県および富山県)で設立された工芸工房です。加賀藩を統治した前田家が多大な支援を行い、江戸時代(1603~1867)が終わり1868年に閉鎖されるまで、高度な技術を持つ職人がしのぎを削り、工芸品や装飾品の発展に大きく貢献しました。


 工房の当初の目的は、他藩の工房と同様、江戸時代以前の約百年にわたる戦乱の時代に、武器の製造や修理を行うことでした。戦乱が収まると、それまでのような武器を対象とした工房のひっ迫した必要性はなくなります。それでも、まだ政情不安だったこともあり、加賀藩初代藩主前田利家(1539頃~1599)は、万が一、再び戦乱が起こった場合に備えて、工房の継続を命じました。以後、時の経過と共に紛争が起きる危険は減少し、工房の職人たちの活動はより芸術的なものへと移行していきました。


 加賀藩3代藩主前田利常(1594~1658)は、工房での装飾美術や工芸の熟達を積極的に奨励しました。利常の影響により、工房は正式に「御細工所」(おさいくしょ)となり、あらゆる方面の熟練工が採用されました。城下町として発展する金沢に全国から職人が集められ、象嵌や加賀蒔絵など、様々な工芸技術がこの工房で開花しました。


 前田家は、単に職人たちを呼び寄せただけでなく、積極的に彼らを金沢に住まわせ、作業にあたらせました。1600年代の加賀の工芸技術の発展には、利常に加えて、第5代藩主の前田綱紀(1643~1724)も大きく貢献したとされています。祖父の利常に育てられた綱紀は芸術への造詣が深く、優れた工芸技術を研究するために工芸品の見本や品々を集めた膨大なコレクション「百工比照」を作成しています。綱紀は、職人たちに工房近くで共同生活させ、工芸の発展を促しました。また、特に優れた作品を制作した職人には褒賞で報いることもしています。


 加賀藩御細工所が新境地を開いた点がもう一つあります。それまで専門技術の知識は、代々子孫に受け継がれ、家族内でのみ発展してきました。しかし、加賀藩御細工所では、漆器、絵付け、金工などあらゆる分野の職人が集まり、肩を並べて作業していました。その結果、異なる工芸技法が組み合わさり、優れた作品を生み出すことができたのです。


 加賀藩御細工所を代表する作品の一つに、江戸時代後期の御輿があります。1800年代には70人以上の職人が在籍し、それぞれの知恵と技術を結集して、この精巧な作品を作り上げました。黒漆塗地に金蒔絵、螺鈿細工、金象嵌などの技法を用いて牡丹唐草模様と前田家の紋所である梅鉢が全体に施され、金具の意匠にも精巧な工夫がこらされています。内部には金地に彩色豊かな絵が描かれ、蒔絵の装飾が施されています。


 1867年に徳川幕府が滅亡し、明治時代(1868~1912)になると、新政府は政治体制の大改革を行います。諸大名は領地と権限を奪われ、藩は県に改編され、加賀藩の一部は1872年に石川県となりました。250年以上続いた加賀藩御細工所も1868年に完全に閉鎖されました。

加賀藩御細工所


加賀藩御細工所是位於加賀藩(今石川縣和富山縣)的手工藝作坊,在16世紀後期由當地實力雄厚的前田家資助,直到西元1868年關閉以前,為培養技藝純熟的工匠及發展手工藝和裝飾藝術做出了巨大貢獻。


在江戶時代(西元1603–1867)以前,日本各地戰火連連,時間長達數十年之久,期間加賀藩和其他許多藩一樣設立了作坊,最初主要是為了維修和管理武器和盔甲。等到後來戰亂平息,作坊傳統的服務不再面臨大量需求。但由於政局仍不穩定,加賀藩第一代藩主前田利家(約西元1539–1599)下令繼續經營作坊,以防再次發生戰爭。過了一段時間後,好在戰爭爆發的風險解除,作坊的工匠們將重心轉向藝術領域。


加賀藩第三代藩主前田利常(西元1594–1658)積極鼓勵作坊發展裝飾藝術和手工藝。在他的推動下,作坊正式以「御細工所」的名義成立,並招募了精通各類手工藝的工匠們。隨著鑲嵌和加賀蒔繪等眾多手工藝技術蓬勃發展,規模日漸擴大的金澤城下町吸引到來自日本各地的工匠。


不僅工匠們主動前來,前田家也積極邀請他們到金澤生活和工作。除了前田利常之外,加賀藩第五代藩主前田綱紀(西元1643–1724)對17世紀加賀手工藝技術的發展同樣功不可沒。前田綱紀由祖父前田利常撫養長大,對藝術充滿熱情,為了對各種精湛的手工藝技術進行分類和研究,他廣泛收集各類手工藝樣本和手工藝品,整理出名為「百工比照」的樣本集。前田綱紀還鼓勵手工藝發展,邀請工匠們在御細工所附近聚居,並獎賞製作出優秀作品的工匠。


加賀藩御細工所的突破創新還體現在另一方面,由於過去手工藝技術往往由某個家族研發和掌握,相關知識也只傳授給後代子孫。然而在加賀藩御細工所裡,漆器、繪畫、金屬加工等各個領域的工匠們聚在一起並肩工作,共同努力之下各種手工藝技巧一齊發展,催生出許多出類拔萃的作品。


在加賀藩御細工所製作的作品中,最具代表性的是一件江戶時代晚期的神轎。到了19世紀,御細工所的工匠已有70餘人,他們結合各自的知識和技巧,攜手打造出這件精巧作品。御輿採用金蒔繪、螺鈿鑲嵌和在黑漆底鑲嵌黃金等手法,呈現花朵裝飾的藤蔓圖案,以及前田家的梅花形家徽。御輿的金屬部件設計也同樣精巧,內部在金底上以蒔繪和彩繪技法勾勒圖案。


加賀藩御細工所延續了250多年,於西元1868年永久關閉。這主要是因為在西元1867年時,德川幕府的統治終結,日本進入明治時代(西元1868–1912),政治結構出現了巨大變革,藩主的土地和權力遭到剝奪,藩地被重新劃分為縣,加賀藩的一部分也在西元1872年成為石川縣。

加贺藩御细工所


加贺藩御细工所是16世纪后期创立于加贺藩(今石川县和富山县)的工艺作坊,由实力雄厚的前田家族赞助。御细工所为培养能工巧匠,发展手工艺和装饰艺术做出了巨大贡献,直到1868年关闭。


在江户时代 (1603–1867) 前,日本经历了数十年的全国战争。加贺藩和其他许多藩地一样设立了工坊,最初主要是为了维修和管理武器盔甲。后来战乱平息,工坊原有的服务不再面临大量需求。但由于政局仍不稳定,加贺藩第一代藩主前田利家(约1539–1599)下令工坊继续经营,以防战争再次爆发。时过境迁,爆发战争的风险逐步消散,工坊的匠人们将重点转向艺术领域。


加贺藩第三代藩主前田利常 (1594–1658) 积极鼓励工坊发展装饰艺术和工艺。在他的推动下,工坊正式改为“御细工所”,聘请了各类型的熟练工匠。镶嵌和加贺莳绘等众多工艺技术蓬勃发展,规模日渐扩大的金泽城下町吸引了来自日本各地的工匠。


不仅工匠们主动聚集,前田家族更是积极邀请他们到金泽生活和工作。除了前田利常之外,加贺藩第五代藩主前田纲纪 (1643–1724) 对17世纪加贺工艺技术的发展同样功不可没。前田纲纪由祖父前田利常抚养长大,对艺术充满热情。为了对各种精湛的工艺技术进行分类和研究,他广泛搜集各类工艺成品物件,创造出名为“百工比照”的样本集锦。前田纲纪让工匠们在御细工所附近聚居,以鼓励技术发展,对造出优秀作品的工匠也予以奖励。


加贺藩御细工所的突破创新还体现在另一个方面。过去,工艺技巧和知识往往由某个家族研发和掌握,也只传授给家族后辈。然而,在加贺藩御细工所里,漆器、绘画、金属工艺等各个领域的工匠聚在一起并肩工作。在这种共同努力之下,各种工艺技巧齐头并进,催生出许多出类拔萃的作品。


加贺藩御细工所最杰出的作品之一是一件江户时代晚期的神轿。到了19世纪,御细工所的工匠已有70余人。他们结合各自知识和技巧,共同创造了这件华丽的作品。御舆采用金莳绘、螺钿镶嵌和黑漆底金镶嵌等手法,呈现花朵装饰的藤蔓图案和前田家族的梅花形家徽。御舆的金属部件设计复杂而精巧,其内部装饰也极为考究,在金底上以莳绘和彩绘技法勾勒出图案。


加贺藩御细工所活跃经营了250余年,于1868年永久关闭。这是因为1867年,德川幕府统治终结,日本进入明治时期 (1868–1912),政治结构出现了巨大变革,藩主的土地和权力被剥夺,藩地被重新划分为县;1872年,加贺藩的一部分成为石川县。

가가번 세공소


 가가번 세공소는 16세기 후반에 가가번(현재의 이시카와현 및 도야마현)에서 설립된 공예 공방입니다. 가가번을 통치했던 마에다 가문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에도 시대(1603~1867)가 끝나고 1868년에 폐쇄될 때까지 뛰어난 기술을 보유한 장인들이 서로 경쟁하며 공예품과 장식품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공방의 초기 목적은 다른 번의 공방과 마찬가지로, 에도 시대 이전 약 100년에 걸친 전란의 시대에 무기 제조와 수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란이 진정되자, 이전처럼 무기를 제작하거나 수리하는 공방의 긴급한 필요성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정세가 불안정했던 상황에서 가가번의 초대 번주였던 마에다 도시이에(1539경~1599)는 혹시라도 다시 전란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해 공방의 지속적인 운영을 명령했습니다. 그 후 시간이 흐르면서 분쟁 발생의 위험이 점차 감소하자, 공방 장인들의 활동은 보다 예술적인 작업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가가번 제3대 번주 마에다 도시쓰네(1594~1658)는 공방에서의 장식미술과 공예기술 연마를 적극적으로 장려했습니다. 도시쓰네의 영향으로 공방은 공식적으로 ‘오사이쿠쇼’로 불리게 되었으며, 다양한 분야의 숙련된 장인들이 채용되었습니다. 성 아래 도시로 발전한 가나자와에는 전국 각지에서 장인들이 모여들었으며, 상감과 가가마키에 등 다양한 공예기술이 이 공방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마에다 가문은 단순히 장인들을 초청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을 적극적으로 가나자와에 정착시켜 작업에 종사하도록 했습니다. 1600년대 가가 공예기술의 발전에는 도시쓰네뿐만 아니라, 제5대 번주 마에다 쓰나노리(1643~1724)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부인 마에다 도시쓰네의 손에서 자란 쓰나노리는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었으며, 뛰어난 공예 기술을 연구하기 위해 공예품의 견본과 작품들을 모아 방대한 컬렉션인 ‘햣코히쇼’를 제작했습니다. 쓰나노리는 장인들이 공방 근처에서 공동생활을 하도록 하여 공예 발전을 촉진했습니다. 또, 특히 뛰어난 작품을 제작한 장인에게는 포상으로 보답하기도 했습니다.


 가가번 세공소가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 또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 이전까지 전문기술에 대한 지식은 대대로 자손에게만 전수되며 가족 내에서만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가가번 세공소에서는 칠기, 그림, 금속공예 등 다양한 분야의 장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작업을 했습니다. 그 결과, 서로 다른 공예기술이 융합되어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가가번 세공소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에도 시대 후기에 제작된 가마가 있습니다. 1800년대에는 70명 이상의 장인들이 소속되어 있었으며, 이들은 각자의 지혜와 기술을 모아 이 정교한 작품을 완성해냈습니다. 검은 옻칠 바탕 위에 금 마키에, 나전세공, 금 상감 등의 기법을 활용하여 모란덩굴무늬와 마에다 가문의 문양인 우메바치가 전체적으로 장식되었으며, 금속장식 디자인에도 정교한 세공이 가미되었습니다. 내부에는 금색 바탕에 다채로운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나전칠기의 장식이 더해져 있습니다.


 1867년에 도쿠가와 막부가 멸망하고 메이지 시대(1868~1912)가 시작되면서 새 정부는 정치체제의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여러 다이묘들은 영지와 권한을 박탈당했고 번은 현으로 개편되었는데, 가가번의 일부는 1872년에 이시카와현이 되었습니다. 250년 이상 지속된 가가번 세공소도 1868년에 완전히 폐쇄되었습니다.

Kaga Domain Workshop (Osaikusho)


The Kaga Domain Workshop (Osaikusho) was a crafts workshop established in the late sixteenth century in Kaga domain (now Ishikawa and Toyama Prefectures). Patronized by the region’s powerful Maeda family, the workshop contributed extensively to the development of highly skilled artisans, crafts, and decorative arts until it was closed in 1868.


The workshop’s original purpose—like that of similar workshops in other domains—was to manage and repair weapons and armor during the decades of countrywide warfare that preceded the Edo period (1603–1867). After the turmoil had subsided, there was no longer great need for the traditional services of the workshop. However, a degree of political instability lingered, so Maeda Toshiie (ca. 1539–1599), the first lord of Kaga domain, ordered the workshop to continue operations, lest conflict break out once more. As time went on, the risk of conflict diminished, and members of the workshop turned to more artistic pursuits.


Maeda Toshitsune (1594–1658), the third lord of Kaga domain, actively encouraged the development of decorative arts and crafts at the workshop. Under Toshitsune’s influence, the workshop was formally established as the Osaikusho, and skilled artisans of every type were employed. Numerous craft techniques flourished, such as zōgan inlay and Kaga maki-e, and artisans from all over Japan were drawn to the growing Kanazawa castle town.


More than their own initiative brought artisans to the area—the Maeda family actively invited many to live and work there. In addition to Toshitsune, Maeda Tsunanori (1643–1724), the fifth lord of the Kaga domain, is largely credited with the development of craft techniques in Kaga during the 1600s. Raised by his grandfather Toshitsune, Tsunanori was enthusiastic about the arts. He created an extensive collection of craft samples and items, known as the Hyakkō Hishō, to study and catalogue superior crafting techniques. Tsunanori encouraged the development of crafts by having the artisans live together near the workshop. He also rewarded those who produced particularly high-quality items.


The Kaga Domain Workshop broke new ground in another respect. Previously, craft techniques had been developed by families who transmitted knowledge of the techniques only to their own descendants. However, at the Kaga Domain Workshop craftsmen of all disciplines—lacquerware, painting, metalwork, and many others—gathered and worked side by side. Their combined efforts enabled the advancement of many craft disciplines and the creation of superb pieces.


One of the most impressive items created at the Kaga Domain Workshop is a ceremonial palanquin from the late Edo period. By the 1800s, there were over 70 artisans working at the workshop, and they combined their knowledge and skills to create this elaborate work. The design features a pattern of vines decorated with flowers and the plum-blossom-shaped Maeda family crest, all rendered in gold maki-e lacquer, raden shell inlay, and gold inlay on a black lacquer background. The metal fittings are also intricately designed. The inside is decorated, as well, with maki-e lacquer and colorful paintings on a gold background.


The Kaga Domain Workshop closed permanently in 1868 after more than 250 years of continuous activity. Its closure resulted from the fall of the Tokugawa shogunate in 1867 and the beginning of the Meiji era (1868–1912), when the country’s political organization was significantly restructured. Domain lords were stripped of their lands and authority, and domains were reorganized into prefectures; part of Kaga domain became Ishikawa Prefecture in 1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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