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Kikuchi Matsubayashi

  • Kumamoto
Topic(s):
Historic Sites/Castle Ruins Annual Events
Medium/Media of Use:
Web Page
Text Length:
≤250 Words
FY Prepared:
2023
Associated Tourism Board:
Kikuchi City

菊池の松囃子


 菊池の松囃子は、武士である菊池一族の歴史における重要な出来事に由来する芸能で、600年以上の伝統を持ちます。中世時代に貴族が楽しんでいた能楽の前身で、唄と太鼓を伴って舞います。

 松囃子は、1349年に菊池一族の城で正月の祝賀行事として初めて上演されました。この時の主賓は、九州へ挙兵のために派遣された皇子、懐良(かねなが)親王(「かねよし」とも読む;1329-1383)でした。

 この時代、朝廷は権力争いの結果二つに分裂し、対立する北朝と南朝が天下の覇権を争っていました。南朝の後醍醐天皇(1288~1339)の息子である懐良は、菊池一族と同盟を結びました。その後の約10年間で、彼らの勢力は九州全域を南朝の支配下に置き、菊池氏の黄金時代が到来しました。

 菊池氏の台頭は長くは続きませんでしたが、松囃子の伝統は今日までほとんど変わることなく続いています。毎年10月13日には、菊池神社の秋の大祭の一環として、地元の保存会によって菊池市中心部の伝統的な舞台で、懐良親王も見物した芸能が再現されます。

 菊池の松囃子は、国の重要無形民俗文化財に指定されています。1300年代後半から1400年代半ばにかけて、観阿弥と世阿弥によって確立された能の中でも、さらに古い能(仮面を被り、美しい衣装を着て演劇する)の要素を体現しているためです。

菊池松囃子


菊池松囃子是一種傳統表演藝術,距今已有600多年的歷史。其伴隨歌聲與太鼓聲起舞的表演形式,延續了日本中世紀(12-16世紀)專供貴族觀賞的歌舞特點。它被認為是能樂的前身,透過它能更系統地了解能樂的傳承軌跡。

菊池松囃子的起源,可以追溯到菊池家歷史上的一樁盛事。1349年,松囃子首次作為新年的慶祝活動在菊池家的城郭裡上演,座上賓為奉旨前來九州組織軍隊的皇子懷良親王(1329-1383)。中國《明史》中也曾提及到他,說他是明朝皇帝冊封的日本國王「良懷」。

這段時期日本權力局勢因鬥爭一分為二,南北兩朝分庭抗禮,對峙爭奪國家的控制權。南朝後醍醐天皇(1288-1339)之子懷良與菊池家結盟,在接下來的十年中,九州全境納入南朝的控制之下,菊池家也迎來了黃金時代。

菊池家崛起的勢頭終歸短暫,松囃子的表演模式却流傳至今,幾乎沒有改變。每年10月13日舉辦的菊池神社秋季祭典上,當地的文化遺產保護團隊會在菊池市中心的傳統舞台上演出,重現當年款待懷良親王的表演,讓現代觀衆一飽眼福。

14世紀晚期至15世紀中葉,「觀阿彌」與「世阿彌」兩位大師開創了能樂這一日本經典表演藝術。因菊池松囃子保留了能樂誕生之前的多種藝術要素,被指定為國家無形民俗文化財產。

菊池松杂子


菊池松杂子是一种具有600多年历史的传统表演艺术,其伴随着歌声和太鼓声起舞的表演形式,沿袭了日本中世纪(12-16世纪)专供贵族观赏的歌舞特点,被认为是能乐的前身,通过它可以更系统地了解能乐的传承轨迹。

菊池松杂子的起源,可追溯至菊池家族历史上的一桩盛事。1349年,在菊池家族的城郭里,松杂子作为贺岁活动首次上演,席上贵宾是奉旨前来九州组建军队的皇子怀良亲王(1329-1383)。中国《明史》中提到的明朝皇帝册封的日本国王“良怀”指的就是这位皇子。

当时的日本因权力斗争分裂成南、北二朝,两派对峙争夺霸权。南朝后醍醐天皇(1288-1339)之子怀良与菊池家族结盟,其后十年里,九州全境被纳入南朝统治之下,菊池家族也迎来了鼎盛时期。

尽管菊池家族的强势地位未能持久,松杂子却以基本未变的形态流传至今。在每年10月13日举行的菊池神社秋季例祭上,当地的文化遗产保护团队会在菊池市中心的传统舞台上演出,让今人也有幸欣赏古代款待怀良亲王的艺术。

14世纪晚期至15世纪中叶,“观阿弥”和“世阿弥”两位大师开创了能乐这一日本经典表演艺术。菊池松杂子保留了能乐诞生之前的多个艺术要素,因而被指定为国家非物质民俗文化财产。

기쿠치의 마쓰바야시


 기쿠치의 마쓰바야시는 무사 가문인 기쿠치 일족의 역사적인 중요한 사건에서 유래한 전통연희로, 6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중세 시대에 귀족들이 즐기던 노가쿠의 옛 형태로, 노래와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춥니다.

 마쓰바야시는 1349년 기쿠치 일족의 성에서 정월 축하행사로서 처음 상연되었습니다. 이때의 주빈은 규슈에 군사를 일으키기 위해 파견된 황태자인 가네나가 친왕(懐良, ‘가네요시’라고도 읽음; 1329-1383)이었습니다.

 이 시대에 조정은 권력 다툼으로 인해 둘로 남북조로 분열돼 서로패권을 다투고 있었습니다. 남조 고다이고 천황(1288-1339)의 아들인 가네나가는 기쿠치 일족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 후 약 10년 동안 남조의 세력은 규슈 전역을 지배했고, 기쿠치 가문은 황금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기쿠치 가문의 전성기는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마쓰바야시의 전통은 오늘날까지 거의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매년 10월 13일에는 기쿠치 신사 가을 대제(大祭)의 일환으로, 가네나가 친왕도 관람하던 전통연희가 지역 보존회 주최로 기쿠치시 중심부의 전통 있는 무대에서 재현됩니다.

 기쿠치의 마쓰바야시는 일본의 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1300년대 후반부터 1400년대 중반에 걸쳐 간아미와 제아미에 의해 확립된 노(가면을 쓰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상연되는 극) 중에서도 더욱 오래된 노의 요소를 구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Kikuchi Matsubayashi


Kikuchi Matsubayashi is a performing art tradition that dates back more than six centuries, to a pivotal event in the Kikuchi warrior clan’s history. It is considered a precursor of Noh theater, modeled on the performing arts enjoyed by the medieval aristocracy: dancing accompanied by singing and drums.

Matsubayashi was first presented as a celebratory New Year’s performance at the Kikuchi clan’s castle in 1349. The guest of honor on this occasion was the recently arrived imperial prince Kanenaga (also known as Kaneyoshi; 1329–1383), who had been sent to Kyushu to raise an army.

During this period, the imperial court split into two as the result of a power struggle, and the rival Northern and Southern courts vied for control of the country. Kanenaga, the son of the Southern Court’s Emperor Godaigo (1288–1339), allied with the Kikuchi clan. In the following decade their forces brought all of Kyushu under Southern Court control, ushering in a golden age for the Kikuchi.

The Kikuchi clan’s ascendancy proved short-lived, but Matsubayashi has endured largely unchanged to this day. The entertainments witnessed by Prince Kanenaga are reenacted by a local heritage association on a traditional stage in central Kikuchi every October 13 as part of the Kikuchi Shrine’s autumn festival.

Kikuchi Matsubayashi has been designated an Intangible Folk Cultural Property, in part because it exemplifies elements of Noh that predate the tradition’s classical form, which was established by the playwrights Kan’ami and Zeami between the late 1300s and mid-140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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