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Kasamatsu Satayū Memorial

  • Wakayama
Topic(s):
Public Works & Institutions (Museums, etc.)
Medium/Media of Use:
App, QR code, etc.
Text Length:
≤250 Words
FY Prepared:
2024
Associated Tourism Board:
Aridagawacho

笠松左太夫頌徳碑


この碑は、有田川町の米作りや紙漉きの発展に貢献した先駆者である庄屋、笠松佐太夫(1598-1673)を顕彰するものである。


1619年、将軍・徳川家康は紀州藩(現在の和歌山県)の藩主に息子の頼宣を任命した。頼宣のもとで、佐太夫は現在の有田川町にある歴史的な清水地域の初代庄屋となった。この地域の山間部では、重要な主食である米を栽培できる平地が限られていた。佐太夫は私財を投じて全長約3キロの上湯用水路を計画・建設した。これによりあらぎ島の棚田など多くの新田を開発した。


佐太夫は、頼宜から紀州藩に和紙工房を設けるようも命じられたが、和紙作りの知識を持っていなかった。佐太夫は、技術を習得するために吉野(現在の奈良県)に赴いたが、自分たちの貴重な技術を守ろうとする職人たちに追い返された。佐太夫は巧妙な解決策を考えた。3人の美男子を吉野に送り、地元の紙漉き職人と結婚させたのだ。3人の青年たちは花嫁を連れて清水(当時は山保田と呼ばれていた)に戻り、そこで技術を地域の環境に適応させ、保田紙と呼ばれる新しい種類の和紙を作り始めた。この技は今日でも行われている。


佐太夫の貢献は、清水とその周辺地域に今もなお恩恵を与え続けている。1927年、有田川町民はこの記念碑をもって英雄の栄誉を称えることを決め、建設資金を調達し、近くの谷から1トンの石を苦労して運んだのである。

笠松左太夫頌徳碑


這座紀念碑是為了紀念笠松左太夫(1598-1673),他是一位有前瞻思維的村長,他為有田川町的稻米耕作及造紙業貢獻良多。


1619年,德川家康將軍任命兒子德川賴宣(1602-1671)為紀州藩(現在的和歌山縣)的藩主。在德川賴宣的領導下,笠松左太夫成為有田川町舊清水地區的第一任村長。稻米是當地的重要穀物,但在當地山區適於種植的土地有限。笠松村長自己出資規劃建造約有3公里長的上湯大圳。此舉促進了許多新稻田的開墾,包括蘭島水稻梯田。


德川賴宣又命令笠松村長在紀州藩設立和紙(日本手工紙)工坊,但他對這門工藝一無所知。笠松村長前往造紙大鎮吉野(現在的奈良縣)學習這項技術,但當地工匠拒絕向他分享造紙工法。笠松村長想出了一個絕佳的解決方案。他派了三位英俊男子到吉野,而之後他們便與吉野當地的造紙師結婚。三位男子帶著擁有新婚妻子回到清水(當時稱為山保田),女子之後根據清水的環境條件調整造紙技術。在清水當地的造紙師後來創造出新型和紙,稱為「保田紙」。這門工藝至今仍在使用。


笠松村長的貢獻至今仍持續使清水及其週邊聚落受益。1927年,有田川居民決定用這座紀念碑來紀念這位英雄。居民籌措資金建造紀念碑,並費力地從附近的山谷運來一塊一噸重的巨石。

笠松左太夫纪念碑


这座纪念碑是为了纪念村长笠松左太夫(1598-1673),他曾凭借远见卓识,为当地的水稻种植和造纸业做出了重要贡献。


1619年,幕府将军德川家康的儿子赖信(1602-1671)受命成为纪州(今和歌山县)的领主。在德川赖信的领导下,笠松左太夫被任命为有田川清水地区的第一任村长。水稻是这片古老地区的主食作物,但该地区多山的地形限制了水稻的种植。笠松村长自掏腰包规划并修建了一条长约3公里的上汤灌溉渠,此举带动了当地人开发新稻田的力度,包括兰岛梯田。


德川赖信还命令笠松村长在纪州成立和纸(手工日本纸张)作坊,但他完全不了解这门手艺。于是他前往吉野(现奈良县的著名造纸区)学习造纸术,但当地工匠为了保密,拒绝分享造纸方法。但他想出了一个绝妙的主意:派三名英俊的年轻人到吉野,让他们与当地的女造纸匠结婚。最终,这些男子带着新娘回到清水(当时称山保田),并调整她们的造纸技术为当地所用。不仅如此,清水的工匠还创造出一种新型和纸“保田纸”,其工艺一直沿用至今。


笠松村长的贡献让清水及周边社区的子孙后代受益匪浅。1927年,为铭记这位英雄,有田川的民众自筹资金修建纪念碑,并从附近山谷取材,使用将近1吨重的石材建成。

가사마쓰 사타유 기념비


이 기념비는 진취적인 생각을 가진 마을 촌장이자 아리다가와의 벼 재배와 제지 발전에 공헌한 가사마쓰 사타유(1598~1673)를 기리기 위한 것입니다.


1619년,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들 요리노부(1602~1671)는 기슈번(현 와카야마현) 통치자로 임명되었습니다. 사타유는 요리노부 체제하에서 현재 아리다가와의 역사적 지구인 시미즈의 첫 촌장이 되었습니다. 쌀은 이 지역의 중요한 주식이었지만, 산간 지형의 특성상 쌀을 재배할 수 있는 평지가 한정적이었습니다. 사타유는 사비를 들여 약 3km 길이의 우와유 용수로를 계획하고 건설했습니다. 이로써 아라기지마 계단식 논을 포함하여 수많은 새로운 논을 개발하는 것이 수월해졌습니다.


요리노부는 사타유에게 기슈번에 와시(일본 수제 종이) 작업장을 세울 것을 지시했지만, 사타유는 제작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제작 방법을 배우려 제지로 유명한 지구이자 현재 나라현에 속한 요시노로 갔지만, 요시노의 장인들은 사타유에게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사타유는 마침내 묘안을 떠올렸습니다. 요시노에 잘생긴 젊은 청년 세 명을 그곳으로 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지의 제지업자들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청년들은 신부와 함께 시미즈(당시에는 야마야스다로 알려짐)로 돌아왔고, 신부들의 제지 기술을 지역 상황에 맞추어 활용했습니다. 그 후 현지 제지업자들은 야스다가미라고 불리는 새로운 종류의 와시를 개발했습니다. 이 기술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타유의 공헌은 여전히 시미즈와 주변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1927년, 기념비를 세워 이 지역의 영웅을 기리기로 한 아리다가와 주민들은 건축 기금을 대고 인근 계곡에서 1톤 무게의 돌을 공들여 옮겨 왔습니다.

Kasamatsu Satayū Memorial


This monument honors Kasamatsu Satayū (1598–1673), a forward-thinking village headman who contributed to rice cultivation and papermaking in Aridagawa.


In 1619, shogun Tokugawa Ieyasu’s son Yorinobu (1602–1671) was appointed to govern the Kishū domain (now Wakayama Prefecture). Under Yorinobu, Satayū became the first headman of what is now Aridagawa’s historic Shimizu district. Rice was an important staple crop for the region, but the district’s mountainous terrain limited where it could be grown. With his own funds, Satayū planned and built the roughly 3-kilometer-long Uwayu Irrigation Canal. This facilitated the development of many new rice paddies, including the Aragijima Rice Terraces.


Yorinobu ordered Satayū to establish washi (handmade Japanese paper) workshops in Kishū domain, but Satayū had no knowledge of the craft. He traveled to Yoshino, a famous papermaking district in what is now Nara Prefecture, to learn the trade, but the artisans there refused to share their methods with him. Satayū arrived at a clever solution: he sent three handsome young men to Yoshino, where they eventually married local papermakers. The men returned to Shimizu (known then as Yamayasuda) with their brides, whose papermaking skills were adapted to regional conditions. Local papermakers then created a new variety of washi referred to as Yasudagami. The craft is still practiced today.


Satayū’s contributions continue to benefit Shimizu and its surrounding communities. In 1927, the residents of Aridagawa chose to honor their local hero with this monument, funding its construction and painstakingly transporting the 1-metric ton stone from a nearby va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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