タイトル 福江島:石の文化

  • 長崎県
ジャンル:
史跡・城跡
媒体利用区分:
パンフレット
ワード数:
501-750
作成年度:
2023年
地域協議会名:
五島の観光資源多言語化プロジェクト

Ishigaki: The Building Blocks of Life


Dry stone walls (those built without a binding material, such as mortar) are called ishigaki in Japanese. The term is most often applied to the walls and foundations of castles, and indeed, some of the finest examples on Fukue include the walls of Fukue Castle. However, ishigaki walls are found nearly everywhere on the island, ranging from those built of smoothly hewn stonework to those constructed of roughly stacked fieldstones. The abundance of volcanic stone on Fukue has made it an important building material for residents from all walks of life, from domain lords to humble farmers, and its use is central to life in this island environment.


Fukue Castle and the Tomie Stone Storehouse

The surviving walls of nineteenth-century Fukue Castle and the eighteenth-century Tomie Stone Storehouse are perhaps the best-constructed examples of ishigaki on Fukue. The hard basalt has been painstakingly hewn to make the stones fit together evenly, resulting in a smooth outer surface. The effort that went into creating them reflects the structures’ prestige—both were commissioned by lords of the time, who could afford to pay for expert stoneworkers, even bringing them in from other parts of the country. Over the centuries, the wooden roofs, doors, and flooring of the structures have been lost. But despite slow deterioration caused by weather and creeping vines, the stone walls are still standing firm.


Street of the Samurai Quarter

Not far from Fukue Castle is a street of mid-ranking samurai residences that illustrate how Fukue looked as a seventeenth-century castle town. The street stretches about 400 meters and is lined by ishigaki walls that enclose each residence. While the buildings themselves are later reconstructions or renovations, the stone walls are largely original and exhibit a feature found almost nowhere else in the country: the walls are topped with stacks of rounded rocks known as “spilling stones” (kobore ishi). The prevailing theory is that the precariously balanced piles were a form of defense. If an opponent tried to scale the walls in a nighttime sneak attack, the sound of the falling stones would rouse the residents. On each side of a gate, the spilling stones are set between bracketing stones shaped like half circles, another feature of Fukue ishigaki. The bracketing stones are affectionately referred to as kamaboko stones, named for their resemblance to the semicircular slices of fishcake found atop hot soba or udon.


Fields and Farms

Outside of the city of Fukue, ishigaki structures shift from finely hewn basalt to rough, porous lava rock. The change in materials serves as a visual distinction between professionally built structures and rough walls made by farmers from fieldstones. Walls around old farmhouses, windbreaks, tin-roofed sheds, and even lean-tos for drying produce are made from this pitted black stone. On the Miiraku Peninsula, lava rock has been used to construct walls around the distinctive round fields called maruhata. Elsewhere, fields are usually easily plowed squares and rectangles, but in Miiraku, farmers shaped their plots around the gently rounded terraces of the lava plateau and the naturally winding flow of water it creates. Lava-rock walls surround the fields to prevent soil erosion while allowing excess water to escape. Because rice requires standing water to grow, these fields are generally used to grow sweet potatoes, barley, and soy.


Kanjiga Castle

On the southern coast of the Tomie Peninsula, another curious example of ishigaki is found in a place called “Kanjiga Castle” or the “Yamazaki Stone Fort.” The ruins of a maze-like seaside fort peek out from the greenery, with roughly formed basalt walls stretching some 180 meters. The exact origins of the fort are a mystery, as there are no records of its construction. However, several features suggest it was once a pirate hideout. First, it is situated in a secluded location, protected by reefs, but with access to the open sea. Next, the fort was constructed with only one entrance, and the walls were dotted with peepholes. Ming dynasty coins, pottery fragments, and human remains unearthed at the site support this idea. Another theory, this one from local folklore, is that the structure was built by a carpenter named Kanji with the assistance of a kappa: a supernatural, turtle-like creature that commonly appears in Japanese folktales.

石垣:生活的基石


不使用灰泥等黏合材料修築的乾砌石牆,在日本被稱為「石垣」(音同「原」)。這個詞最常用於城郭的牆壁和地基,而說到福江島上最好的石垣典範,則不能不提及福江城的圍牆。石垣在這座島上幾乎隨處可見,有切割精細的精修石牆,也有風格粗獷的散石壁。福江島的火山石資源十分豐富,是當地重要的建築材料,從藩主到山野農夫,不分行業,無論貴賤,生活環境都離不開火山石。


福江城和富江石藏

福江島上現存品質最高的石垣建築,或許是19世紀的福江城城牆和18世紀的富江石藏(石頭倉庫)的外壁。這兩座建築均是當時的領主下令修建的,因此有充足的財力甚至從日本其他地方請來專業石匠。堅硬的玄武岩經過精心開採加工,外立面光滑平整.所有石塊都嚴絲合縫地拼合在一起,工程之精良凸顯了建築的尊貴程度。幾百年過去了,木製屋頂、門扉和地板均已不存在,唯有石垣屹立不倒,在風雨和藤蔓的長年侵蝕下依舊堅固。


武家屋敷通

距離福江城不遠的「武家屋敷通」(武士宅邸街)曾是中階武士的聚居地,這裡至今依然能夠窺見17世紀作為城下町(圍繞城郭發展起來的市鎮)時的福江面貌。走在這條全長約400公尺的街道上,可以看到兩旁每座宅邸都有石垣圍繞。雖然這些房屋本身都經過重建或翻新,石垣卻大多保留了最原始的模樣。牆頭上往往堆放著被稱為「溢落石」的圓形石頭,這在日本其他地方幾乎看不到。據說這些搖搖欲墜的石堆應該是一種防禦設施,如果有敵人試圖在夜間翻牆偷襲,石頭滾落的聲音就會驚醒住戶。此外,大門左右兩側的半圓形支架石間也都堆疊著溢落石,這是福江石垣的另一大特徵。因為這種支架石很像放在蕎麥麵和烏龍麵上的半圓形魚糕,所以人們親切地稱之為「魚糕石」。


農舍與圓畑

在福江市郊外,有粗糙多孔的火山熔岩石牆,也有精削細鑿的玄武岩石垣。只要看材質,便可以分辨究竟是出自專業匠人之手,還是由農民使用田間石頭自建的粗糙圍牆。不論是古老農舍的圍牆、防風壁、錫皮頂的棚屋,還是晾曬農作物的單坡頂小屋,都是用這種坑坑窪窪的黑色火山石建造的。在三井樂半島上,火山熔岩還被用來修築田壟,保護當地被稱為「圓畑」(畑,音同「田」)的獨特的圓形田地。不像其他地方的田地通常規劃為方便耕作的長方形或正方形,三井樂農民因地制宜,根據火山熔岩台地上平緩的圓形階地和自然形成的蜿蜒流水來規劃田地。環繞圓畑的熔岩田壟可以防止土壤流失,同時兼顧排水性。因為水稻種植需要不斷灌水,而當地又無法滿足,所以這些田地通常被用來種植地瓜、大麥和大豆。


勘次之城

人們在福江半島的南海岸發現了另一個稱為「勘次之城」,或者叫「山崎的石壘」的奇特石垣樣本。這是一座迷宮般的海岸要塞遺址,粗糙的玄武岩城牆綿延大約180公尺,自綠樹叢中探出一角。目前找不到任何有關建造它的記錄,這座要塞的來歷始終是一個謎。然而,多個特徵顯示,這裡很可能曾是一處海盜據點:首先,它隱身在礁石背後,地理位置非常隱蔽,卻有一個通往外海的通道;其次,這座要塞只有一個入口,圍牆上卻遍布瞭望孔;此外,要塞地下發掘出的中國明代錢幣、陶器殘片和人類遺骸也進一步證實了這一論點。但當地民間還流傳著另一種說法,認為這處建築是一隻河童幫助一位名叫勘次的木匠修建的,河童是一種常常出現在日本的民間故事裡的神話生物,形似烏龜。

石垣:生活的基石


不使用灰泥等粘合材料修筑的干石墙,在日本被称为“石垣”(音同“原”)。这个词最常用于城郭的墙壁和地基,而福江城的围墙就是福江岛上最好的石垣典范之一。不过,石垣在这座岛上几乎随处可见,有切割精细的精修石墙,也有风格粗犷的散石壁。福江岛的火山石资源十分丰富,是当地重要的建筑材料,从藩主到山野农夫,无论贵贱,不分行业,生活环境里都少不了火山石。


福江城和富江石藏

19世纪的福江城城墙和18世纪的富江石藏(石头仓库)外墙或许是福江岛上现存质量最高的石垣建筑。坚硬的玄武岩经过精心开采、加工,所有石块都严丝合缝地拼合在一起,形成了光滑平整的外立面。两处建筑均由当时的领主下令修建,因此有足够的财力甚至从日本其他地区请来专业石匠,以精良的工程凸显建筑的尊贵程度。几百年过去,木制屋顶、门扉和地板均已不存,只留下石垣本身,在风雨和藤蔓的长年侵蚀下依旧坚固,屹立不倒。


武家屋敷通

武家屋敷通(武士宅邸街)距离福江城不远,曾是中阶武士的聚居地,至今依然能够在这里窥见17世纪作为城下町(围绕城郭发展起来的市镇)时的福江面貌。这条街全长约400米,两侧宅邸均有石垣围绕。虽然这些房屋本身都经过重建或翻新,石垣却大多保留着最初的模样。这里的墙头上往往安放着被称为“溢落石”的圆形石头,这在日本其他地方非常罕见。据说这些摇摇欲坠的石堆是一种防御设施,如果有敌人试图在夜间翻墙偷袭,石头滚落的声音就会惊醒住户。此外,大门左右两侧的半圆形的支架石间也堆叠着溢落石,这是福江石垣的另一大特征。这种支架石被亲切地称为“鱼糕石”,因为它们很像放在荞麦面和乌冬面里的半圆形鱼糕。


农舍与圆畑

福江市郊外有精削细凿的玄武岩石垣,也有粗糙多孔的火山熔岩石墙。只看材质的不同,便足以分辨它们是出自专业匠人之手,还是由农民使用田间石头自建的粗糙围墙。古老农舍的围墙、防风壁、锡皮顶的棚屋,乃至于晾晒农作物的单坡顶小屋,都是用这种坑坑洼洼的黑色火山石建造的。在三井乐半岛上,火山熔岩还被用来修筑田垄,保护当地被称为“圆畑”(畑,音同“田”)的独特的圆形田地。其他地方的田地通常规划为方便耕作的长方形或正方形,三井乐的农民们则因地制宜,根据火山熔岩台地上平缓的圆形阶地和自然形成的蜿蜒流水来规划田地。环绕圆畑的熔岩田垄可以防止土壤流失,同时兼顾排水性。水稻种植需要不断灌水,当地条件无法满足,因此,这些田地通常被用来种植红薯、大麦和大豆。


勘次之城

在福江半岛的南海岸,人们发现了另一个奇特的石垣样本,称为“勘次之城”,也叫“山崎的石垒”。这是一座迷宫般的海岸要塞遗址,自绿树丛中探出一角,粗糙的玄武岩城墙绵延大约180米。这座要塞的来历是个谜,也找不到任何建造记录。然而,多个特征显示,这里很可能曾是一处海盗据点。首先,它所处的地理位置十分隐蔽,位于礁石背后,却有一个通往外海的通道。其次,这座要塞只有一个入口,围墙上却遍布瞭望孔。此外,要塞地下发掘出的中国明代钱币、陶器残片和人类遗骸进一步支持了这一推断。但本地民间还流传着另一种说法,认为这处建筑是一位名叫勘次的木匠在一只河童的帮助下修建的。河童是一种形似乌龟的神话生物,常常出现在日本的民间故事里。

후쿠에지마 섬: 돌 문화


모르타르 등의 접착제를 쓰지 않고 쌓아 올린 돌벽을 ‘이시가키(돌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우뚝 솟은 성벽이나 토대를 가리키는 데 쓰이는데, 실제로 후쿠에에서 가장 뛰어난 예로서는 후쿠에성의 성벽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돌담은 섬의 거의 전역에서 볼 수 있으며, 매끈하게 자른 석재로 만든 벽부터 거친 돌을 아무렇게나 쌓아 올린 것까지 다양합니다. 후쿠에에는 화산석이 풍부하기 때문에 번주부터 농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의 주민에게 중요한 건축 자재였으며, 화산석 이용은 이 섬의 환경에서 생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후쿠에성과 도미에 이시구라

현존하는 19세기의 후쿠에성 성벽과 18세기의 도미에 이시구라는 아마도 후쿠에에서 가장 훌륭한 돌담의 예일 것입니다. 단단한 현무암을 정성껏 잘라내고 돌과 돌이 고르게 맞물리게 해 매끄러운 외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둘 다 당시 영주의 주문에 따른 것으로서 영주는 전문 석공을 고용할 여유가 있었습니다. 몇 세기에 걸쳐 목조 지붕, 문, 마루는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하지만 비바람과 무성한 덩굴 때문에 서서히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돌담은 지금도 굳건히 서 있습니다.


무가 저택 거리

후쿠에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17세기의 성하 마을인 후쿠에의 모습을 지금도 전해주는 중급 무가 저택 거리가 있습니다. 이 거리는 약 400m에 걸쳐 이어지며, 각 저택을 둘러싸듯이 이시가키(돌담)가 늘어서 있습니다. 건물 자체는 후세에 재건되거나 개축되었지만, 돌담은 당시의 것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으며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고보레이시’라고 하는 둥근 돌을 쌓아 올린 것이 특징입니다. 이렇게 균형이 잘 잡히지 않은 채 쌓아 올려진 돌은 방어를 위한 것이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적이 야간에 성벽을 넘어 숨어들려고 했을 때, 돌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주민들을 깨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문 양 옆으로는 후쿠에 이시가키의 또 하나의 특징인, 반원형으로 쌓아 올려진 작은 돌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는 따뜻한 메밀국수나 우동 위에 올리는 가마보코(반원형으로 만든 어묵)와 닮았다고 해서 친근함을 담아 가마보코이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마루하타

후쿠에시 교외로 나가면, 현무암을 잘게 자른 돌담의 형태에서 다공질 용암을 거칠게 쌓아 올린 돌담의 형태로 바뀐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재가 달라지면서 장인이 의뢰를 받아 지은 축조물과 농가에서 자신들이 직접 근처 땅에서 돌을 가져와 쌓은 거친 돌담이 시각적으로 구별됩니다. 오래된 농가의 담, 방풍림, 함석 지붕 오두막, 농산물을 말리기 위한 오두막에 이르기까지 이 구멍이 난 검은 돌로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미이라쿠 반도에서는 마루하타라고 하는 특징적인 원형 밭 주위에 담을 쌓을 때도 용암석이 사용되었습니다. 다른 지역의 밭은 쉽게 경작할 수 있는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이 일반적이지만, 미이라쿠의 농가에서는 용암대지의 완만하고 둥그스름한 지형에 따른 다랑논과 그 다랑논이 만드는 자연적인 물굽이에 따라 밭을 만들었습니다. 용암 벽이 마루하타를 둘러싸서 토양의 침식을 막는 동시에 여분의 물을 흘려보냅니다. 벼 재배에는 늘 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밭들에서는 일반적으로 고구마, 보리, 대두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간지가성

도미에 반도의 남해안에 ‘간지가성’ 또는 ‘야마자키의 석루’라고 불리는 또 하나의 놀라운 돌담이 있습니다. 미로 같은 해변의 요새 터가 녹지대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거칠게 형성된 현무암 성벽이 약 180m에 걸쳐 이어져 있습니다. 요새의 정확한 기원은 수수께끼에 싸여 있습니다. 하지만 일찍이 해적의 은신처였음을 보여주는 요소가 많습니다. 우선 암초에 의해 지켜지는 외딴 장소에 있으면서 먼바다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요새 입구는 하나밖에 없으며 벽에는 밖을 엿볼 수 있는 구멍이 곳곳에 있습니다. 유적에서 출토된 명나라 화폐, 도기 파편, 인골 등이 이 설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설은 지역의 민화에서 유래하는데, 갓파(물속에 산다는 어린아이를 닮은 상상의 동물)의 도움을 받아 간지라는 이름의 목수가 지었다고 합니다.

福江島:石の文化


モルタルなどの結合材を使わずに造られた石の壁を「石垣(いしがき)」と呼ぶ。この言葉は、城のそびえ立つ壁や土台のことを指すのに使われるが、実際、福江で最も優れた例としては、福江城の城壁も含まれている。石垣は島のほぼ全域で見られ、滑らかに切り出された石材で作られた壁から、野面石を荒々しく積み重ねたものまで様々である。福江には火山石が豊富にあるため、藩主から農民まで、あらゆる階層の住民にとって重要な建築材料となっており、その利用はこの島の環境における生活の中心となっている。


福江城と富江石蔵

現存する19世紀の福江城の城壁と18世紀の富江石蔵は、おそらく福江で最もよい石垣の例だろう。硬い玄武岩を丹念に切り出し、石と石が均等に組み合わされ、滑らかな外面を呈している。どちらも当時の領主の注文によるもので、領主は専門の石工を雇う余裕があった。数世紀を経て、木造の屋根、扉、床は姿を消した。しかし、風雨や蔓の繁茂によって徐々に劣化しているにもかかわらず、石垣は今もしっかりと立っている。


武家屋敷通り

福江城からほど近い場所に、17世紀の城下町福江の姿を今に伝える中級武家屋敷通りがある。この通りは約400メートルにわたって続き、それぞれの屋敷を囲むように石垣が並んでいる。建物自体は後世に再建や改築されたものだが、石垣はほぼオリジナルのもので、全国でもほとんど他では見られない「こぼれ石」と呼ばれる丸石を積み上げているのが特徴である。この不安定なバランスで積み上げられた石は、防御のためのものだったという説が有力である。敵が夜間に城壁を乗り越えて忍び寄ろうとした場合、石が落ちる音を聞いて、住民を起こすことができたのだ。門の両脇には、福江石垣のもうひとつの特徴である半円の形で積み上げている小石が残されている。これは、温かいそばやうどんの上にのっているかまぼこ(半円の形をした魚の練りで作られた食べ物)に似ていることから、親しみを込めてかまぼこ石と呼ばれている。


円畑

福江市の郊外に移動すると、玄武岩を細かく切り出した石垣の形から、多孔質の溶岩でできた荒々しい石垣へと変化していることがわかる。素材が変わることで、職人が依頼を受けて建てた建造物と、農家が自分の手で近くの土から石を引き出して建てた荒壁とが、視覚的に区別される。古い農家の塀、防風林、トタン屋根の小屋、農産物を干すための小屋でさえ、この穴のあいた黒い石で作られている。また、三井楽半島では、円畑と呼ばれる特徴的な円い畑の周囲に塀を築くのに溶岩石が使われてきた。他の地域では、畑は簡単に耕せる正方形や長方形が一般的だが、三井楽では、農家は溶岩台地のなだらかな丸みを帯びた地形によって、その段々畑が作る自然に曲がりくねった水の流れに沿って畑を形作った。溶岩の壁が田畑を囲み、土壌の浸食を防ぐと同時に余分な水を逃がす。稲の生育には常時水が必要なため、これらの畑では一般的にサツマイモ、大麦、大豆が栽培されている。


勘次ヶ城

富江半島の南海岸に、「勘次ヶ城」あるいは「山崎の石塁」と呼ばれる、もうひとつの不思議な石垣がある。迷路のような海辺の砦跡が緑の中から顔を覗かせ、荒々しく形成された玄武岩の城壁が約180メートルにわたって続いている。砦の正確な起源は謎に包まれている。しかし、かつて海賊の隠れ家であったことを示唆する要素は多い。まず、岩礁に守られた人里離れた場所にありながら、外洋に出られること。次に、砦の入り口はひとつしかなく、壁にはのぞき穴が点在していた。遺跡から出土した明代の貨幣、陶器の破片、人骨などがこの説を裏付けている。もうひとつの説は、地元の民話に由来するもので、河童(水の中に住むという子供に似た想像上の生き物)の助けを借りて勘次という名の大工が建てたというもの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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