タイトル 大蛇山祭り

  • 福岡県
ジャンル:
史跡・城跡
媒体利用区分:
Webページ
ワード数:
251-500
作成年度:
2024年
地域協議会名:
大牟田市

Daijayama Festival


The Daijayama Festival is an eye-catching Gion festival held every year in Ōmuta on the fourth weekend of July. Gion festivals originated in Kyoto to prevent the spread of disease. During the Daijayama Festival, massive serpentine floats spouting fire and smoke are paraded through the town to musical accompaniment. Local residents place small children into the mouths of the giant snakes to ensure their good health for the year. The louder the child cries, the stronger the protection they receive.


The origins of the festival are murky, but in the early seventeenth century, the lord of Yanagawa domain established the region’s first Gion shrine, which is now called Miike Honmachi Gion Shrine, to spiritually protect the region. The area around Ōmuta did not have a reliable water source, and farmers would pray to Daija, a snakelike water deity, for rain. In 1637, natural disasters destroyed the crops in the neighboring Miike domain, so the ruling Tachibana family built a dam, creating a reservoir and a stable water supply. According to local legend, the Yanagawa domain presented a festival float to the shrine three years later.


The earliest written record of the Miike Gion Festival, the precursor to the Daijayama Festival, is from 1852. It says that about 30 people pulled a float made from bamboo and rope. This is thought to be the prototype of today’s snakelike floats, and worship of the water deities is thought to have merged with the Gion festival around this time. In 1853, the Tachibana family gifted a Daijayama float to the shrine. In 1893, young parishioners of Honmachi Gion Shrine began parading their own float, modeled on the earlier float.


Coal mining boomed in Ōmuta during the Meiji era (1868–1912), bringing many people to work in the mine. Four of the new miner neighborhoods built their own floats and held their own Daijayama parades.


After World War II, 12 more neighborhoods made their own floats and began their own Daijayama parades. Most of these floats are still in use today and are over 5 meters tall and weigh over 3 tons. In the 1950s, people created dances set to “Tanko Bushi,” a coal mining song written at the Mitsui Group-run mine in nearby Chikuhō. The song was adopted by mining families at Mitsui-run Miike Coal Mine. By the 1960s, all the parades had merged together and combined with the Tanko Bushi dances. The resulting festival has more than 10,000 participants, and the parade can stretch up to 2 kilometers.

大蛇山祭


大蛇山祭是相當值得觀賞的祇園祭,每年7月的第四個週末在大牟田舉行。祇園祭起源於京都,目的是防止疫病蔓延。在大蛇山祭期間,巨大的蛇形山車會噴出火焰與煙霧,在音樂伴奏下於城鎮中遊行。當地居民會將小孩放入巨蛇口中,祈求一整年的健康。孩子哭得越大聲,他們受到的庇佑就越強。


祭典的起源不明,但在十七世紀初,柳川藩藩主為了從心靈層面庇護當地,建立了該地區第一座祇園神社,也就是現在的三池本町祇園宮。大牟田一帶當時缺乏穩定水源,於是農民會向外觀似蛇的水神「大蛇」祈求降雨。1637年,天災摧毀了鄰近的三池藩的農作物,統治者立花家於是建造了一座水壩,形成水庫和穩定的供水。根據當地傳說,柳川藩在三年後向神社獻上了一座祭典山車。


三池祇園祭(大蛇山祭的前身)最早的文獻記載來自1852年。內容提及約30人拉著一座由竹子與繩索製成的山車。據信這就是現代的蛇形山車的原形,而水神的祭祀活動也據稱是大約於此時與祇園祭融合。1853年,立花氏向神社獻上一座大蛇山山車。1893年,本町祇園神社的年輕信徒開始仿效早期山車的樣式,以自製的山車遊行。


明治時代(1868–1912年),隨著煤礦業的繁榮,吸引了大許多人來到此地工作,其中四個新的礦工社群自製山車,並舉辦自己的大蛇山遊行。


二戰後,又有12個社群開始製作山車並舉辦遊行。這些山車大多沿用至今,高度超過5公尺、重量超過3噸。50年代,當地人為「炭坑節」這首於筑豐地區鄰近的三井煤礦編寫的煤礦勞動歌曲創作舞蹈。當時,在三井集團經營的三池煤礦工作的礦工家庭都學會了這首歌。60年代,所有遊行活動經過整合,一起加入了「炭坑節」舞蹈。後來產生的祭典已可吸引超過1萬名參與者,遊行隊伍可長達2公里。

大蛇山祭典


大蛇山祭典是每年7月第四个周末在大牟田举行的一场引人注目的祇园祭。祇园祭起源于京都,最初是为了驱邪避疫而举行的祭典。在大蛇山祭典期间,巨大的蛇形山车在音乐伴奏下在城镇中巡游,吐出火焰和烟雾。当地居民为祈求幼童来年健康,会将幼童放入巨蛇口中。据说孩子的哭声越大,获得的庇护就越强。


大蛇山祭典的起源虽无确切记载,但在17世纪初,柳川藩主建立了该地区第一座祇园神社,即现在的三池本町祇园神社,用以护佑这片地区。大牟田地区缺乏稳定的水源,农民会向蛇形水神“大蛇”祈雨。1637年,自然灾害摧毁了邻近三池藩的庄稼,于是统治者立花家族修建水坝,建成水库,这才确保了稳定的供水。根据当地传说,三年后柳川藩向神社赠送了一辆祭奠山车。


最早关于“三池祇园祭”(大蛇山祭典的前身)的文字记载可追溯至1852年。据记载,当时约有30人抬着用竹子和绳索制成的彩车巡游。这被认为是今天蛇形山车的原型,也是水神崇拜与祇园祭融合的开端。1853年,立花家族向神社赠送了一辆大蛇山山车。1893年,本町祇园神社的年轻信徒开始使用自己的山车巡游,其样式仿照早期山车。


明治时代(1868-1912),大牟田的煤矿业蓬勃发展,吸引了许多人来此工作。四个新建的矿工社区制作了自己的山车,参加大蛇山巡游。


二战后,又有12个社区制作了自己的山车,开始举行大蛇山巡游。这些山车大多至今仍在使用,高度超过5米,重量超过3吨。20世纪50年代,人们创作了配合民谣《炭坑节》的舞蹈。这首歌最初是在附近筑丰三井集团经营的矿场创作的,后来被同属三井集团经营的三池煤矿的矿工家庭所接受。到了20世纪60年代,所有的巡游都合并在一起,并与炭坑节舞蹈相结合。活动期间可吸引超过10000名的参与者,巡游队伍甚至长达2公里。

다이자야마 축제


다이자야마 축제는 눈길을 끄는 기온 축제로, 매년 7월 넷째 주 토요일에 오무타시에서 열립니다. 기온 축제는 질병 확산을 막고자 교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다이자야마 축제가 열리는 동안 거대한 뱀 장식 수레가 불과 연기를 내뿜으며 음악에 맞춰 마을 곳곳을 행진합니다. 지역 주민들은 한 해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어린아이들을 거대한 뱀의 입 속에 집어넣습니다. 아이들의 울음 소리가 크면 클수록 수호 효과도 커집니다.


이 축제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17세기 초 야나가와 번(藩, 옛 일본의 행정 단위)의 영주가 이 지역을 영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지역 최초의 기온 신사(현재의 미이케 혼마치 기온구 신사)를 세웠습니다. 오무타 주변 지역에는 안정적인 수원이 없었기 때문에 농부들은 뱀처럼 생긴 물의 신, 다이자에게 비를 내려달라고 기원하곤 했습니다. 1637년, 인근의 미이케 번에 닥친 자연재해로 작물이 모두 파괴되자 지배 세력이었던 다치바나 가문은 둑을 건설하여 저수지와 안정적인 용수 공급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지역의 전설에 따르면, 야나가와 번은 그로부터 3년 후 신사에 축제용 장식 수레를 바쳤다고 합니다.


다이자야마 축제의 전신인 미이케 기온 축제에 관한 최초의 서면 기록은 1852년에 작성되었습니다. 이에 따르면 약 30명이 대나무와 밧줄로 만든 장식 수레를 끌었다고 합니다. 이 장식 수레는 오늘날 뱀 모양 장식 수레의 원조로 여겨지며, 이 무렵에 물의 신에 대한 숭상이 기온 축제와 합쳐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1853년, 다치바나 가문은 신사에 다이자야마 장식 수레를 기증했습니다. 1893년, 혼마치 기온구 신사의 젊은이들이 이전 수레를 본떠 만든 장식 수레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메이지 시대(1868~1912)에 오무타시가 석탄 채굴로 호황을 누리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탄광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새로 형성된 광부촌 4곳에서 장식 수레를 직접 제작하여 자체적으로 다이자야마 행진을 개최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광부촌 12곳에서 장식 수레를 직접 제작하여 자체적으로 다이자야마 행진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제작된 장식 수레 대부분은 지금까지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 높이는 5m, 무게는 3톤이 넘습니다. 1950년대에 사람들은 인근 치쿠호의 미쓰이 그룹이 운영하던 탄광에서 쓰인 탄광(단코) 노동요 ‘단코부시’에 맞춰 춤을 만들었습니다. 미쓰이가 운영하는 미이케 탄광의 광부 가족들도 이 노래를 받아들인 1960년에는 모든 행진이 하나로 합쳐져 단코부시 춤과 결합되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축제에는 만여 명의 참여자가 몰리고 행렬은 2km에 달할 때도 있습니다.

大蛇山祭り


大蛇山祭りは、毎年7月の第4土曜日に大牟田市で開催される、目を引く祇園祭である。祇園祭は疫病の蔓延を防ぐ払うために京都で始まったものである。大蛇山祭りでは、火や煙を噴き出す巨大な蛇の山車が音楽に合わせて町を練り歩く。地元住民は、1年間の無病息災を祈願して、小さな子供たちを大蛇の口の中に入れる。子供が泣けば泣くほど、より強力な守護が得られるとされている。


祭りの起源ははっきりしないが、17世紀初頭に柳川藩主がこの地域を霊的に守るために、同地で最初の祇園神社(現在の三池本町祇園宮)を創建した。大牟田周辺には安定した水源がなく、農民たちは蛇のような水の神様である大蛇に雨乞いをした。1637年、近隣の三池藩で自然災害により作物が全滅したため、藩主立花家は堰を建設し、貯水池を作り、安定した水の供給を実現した。地元の言い伝えによると、その3年後に柳川藩が神社に山車を寄贈したといわれている。


大蛇山祭りの前身である三池祇園祭りの最も古い記録は1852年のものである。それによると、竹と縄でできた神輿を約30人が引いていたとある。これが現在の蛇のような形をした神輿の原型と考えられ、この時に水神信仰が祇園祭と融合したと考えられている。1853年には立花家から大蛇山が寄進された。1893年には、本町祇園神社の若者たちが、以前の山車を模した山車を曳き始めた。


明治時代(1868~1912年)に大牟田で石炭採掘が盛んになると、多くの人々が炭鉱で働くようになった。新たにできた4つの炭鉱地区でもそれぞれ山車を制作し大蛇山パレードを開催した。


第二次世界大戦後、さらに12の地区が山車を制作し独自の大蛇山パレードを開始した。これらの山車のほとんどは現在も使用されており、高さは5メートル以上、重さは3トンを超える。1950年代には、近くの筑豊にある三井グループ経営の炭鉱で書かれた炭鉱労働歌「炭坑節」に合わせた踊りが始まった。この歌は、同じく三井が運営する三池炭鉱の労働者家族たちにも受け入れられた1960年代までに、すべてのパレードが総踊りと合わさった。現在では1万人以上が参加し、パレードは2キロメートルに及ぶこともある。

再検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