タイトル 門司港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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ジャンル:
史跡・城跡
媒体利用区分:
Webページ
ワード数:
251-500
作成年度:
2023年
地域協議会名:
関門インバウンド受入協議会

Mojikō Station


Moji: Gateway to Japan and the World

Since 1891, Mojikō Station has connected Kyushu to the Japanese mainland and the world at large. Its symmetrical, Neo-Renaissance design is reminiscent of a gateway, reflecting the role it has played for over a century. In the years since its construction, the station has been relocated, renamed, and renovated, but it endures as a symbol of Moji’s prosperity at the turn of the twentieth century.


Spurred by Moji Port’s rapid development, in 1914 the city demolished the old station building and erected a new building closer to the water, where it stands today. Though originally called “Moji Station,” it was renamed in April 1942 to become Mojikō (Moji Port). This name change coincided with the opening of the Kanmon Tunnel, which linked Kyushu’s railroad to Japan’s main island of Honshu.


European Architectural Influence

Although the two-story wooden structure appears to be clad in stone, it is actually covered in a layer of mortar that has been shaped to resemble stone cladding. The mansard roof, decorative ironwork, and pilasters flanking the main entrance are all features of Neo-Renaissance architecture, which became popular in Europe in the mid-nineteenth century. The presence of these European elements hints at the influence that Western design had on Japanese architects of the late nineteenth and early twentieth centuries.


A Once-Bustling Station

Mojikō Station underwent six years of extensive renovation before reopening in 2019. Today, it serves as both a public train station and a physical testament to Moji’s identity at the turn of the 1900s. The station retains many of its twentieth-century features, such as the elegant mantelpiece and fireplace in the ticket office, formerly the waiting lounge for first- and second-class ticket holders. Third-class passengers waited across the main hall, in a room that is now a café. Staircases near the entrance lead to the second floor, where there was once a special lounge for important visitors and an annex for their servants. These prestigious passengers were served European cuisine at Mikado Shokudō, a restaurant run by the same company that operated the trains’ dining cars. The luxurious furnishings and elegant interior are now part of an exhibit on the historic station.


Mementos of Mojikō’s Past

Mojikō Station played a vital role as Kyushu’s overland connection to Moji Port, and by extension, to the world at large. Millions of people have come and gone from the port, and some of them have become the subjects of stories that are still repeated today:


Ikeda Utako and the “Mirror of Pride

In the northwest wing, a large, ornate mirror hangs alongside a placard detailing the story of Ikeda Utako. In August 1945, World War II had just ended, and Japan had begun to withdraw its troops from overseas. Soldiers and citizens poured into Moji, and throngs of people arriving at the station waited for hours to pack themselves onto trains. Among them was a pregnant traveler named Utako, who went into labor on the platform. Night had already fallen when her water broke, and all the local doctors had already closed their clinics, so a member of the station staff escorted Utako to his own house, carrying her three-year-old child on his back. With the help of a neighbor, he safely delivered the baby. Utako named her newborn boy “Samonji,” written using the kanji characters for “Moji.”


As an adult, Ikeda Samonji donated the “Mirror of Pride” to the station in 1971. It was his hope that station staff would look at their reflections and feel a sense of pride in their work.


The Fountain of Homecoming Water

A fountain in front of the old washroom by the platforms is another lingering reminder of the many travelers who passed through the station. It is labeled kaeri mizu, or “homecoming water.” This fountain is where returning soldiers and repatriated Japanese citizens from the colonies could wash off the steamship soot and the dust of travel and take their first drinks of water on home soil.

門司港站


門司,通往日本和世界的門戶

自1891年以來,門司港站一直是連接九州與本州乃至世界的樞紐。左右對稱的新文藝復興風格的設計,令車站建築宛如一座宏偉的城門,彰顯它100多年來所發揮的作用。雖然經歷了搬遷、更名和翻新,但身為門司在20世紀之交的繁榮象徵,車站依然歷久彌新。

隨著門司港的快速發展,1914年,門司市拆除了舊車站,在更靠近海邊的地方建造了一座新車站,並一直保留至今。車站一開始名為「門司站」,1942年4月更名為「門司港站」,改名時,正值連接九州和本州鐵路的關門隧道開通。

1988年,門司港站成為日本第一個被指定為國家重要文化財產的車站。在仍在營運的車站中,只有門司港站和東京站享有此美譽。


歐洲建築風格的影響

乍看之下,這座兩層樓高的木造建築的外牆貌似用石塊砌成,但其實是灰泥仿石磚工藝帶來的效果。其餘像是坡形屋頂、裝飾性鐵藝和主入口兩側的壁柱,都具備19世紀中葉歐洲盛行的新文藝復興風格。由此可見,西方設計在19世紀晚期至20世紀早期對日本建築師產生的影響。


昔日繁華的車站

歷經6年大規模翻修後,門司港站在2019年重新開放。如今,它既是一座公共火車站,也是20世紀之交時門司特殊地位的見證。車站保留了許多20世紀時的特色,比如售票處,過去是一等和二等車廂旅客的候車室,裡面的壁爐台和壁爐造型都十分豪華;大廳對面曾經的三等車廂候車室已改建成咖啡廳;車站入口附近的樓梯通向二樓,那裡以前是貴賓休息室,還有一個附屬的僕人房。貴客們可以享用「みかど(Mikado)食堂」提供的歐式美食,這家食堂還同時負責餐車經營。這些豪華的家具和典雅的室內裝潢,都已成為這座歷史悠久的車站的組成部分。


門司港的過去

門司港站將九州陸路與門司港相連,也是連接世界各地的樞紐,非常重要。多年來,數以百萬計的人進出於此,其中一些人的故事流傳至今。


池田うた和「驕傲之鏡」

門司港站西北翼掛著一面華麗的大鏡子,上方的牌子向人們敘述著池田うた子(Ikeda Utako)的故事。

1945年8月,時值第二次世界大戰剛結束,日本開始從海外撤軍。潮水般湧入門司的士兵和市民,需要在門司港站等候好幾個小時擠上火車。月台上一位名叫池田うた子的孕婦忽然開始陣痛,當她的羊水破裂時已經是晚上,當地所有診所都打烊了。一名車站工作人員毅然背起她3歲大的孩子,將母子倆帶回自己家中,並在鄰居的幫助下順利接生了孩子。為了記念此事,池田うた子給剛出生的孩子取名「左門司」。

1971年,成年後的池田左門司把這面「驕傲之鏡」捐贈給了門司港站,希望車站的員工們能從鏡子中「看到自己,並為自己的工作感到自豪」。


返鄉之水

月台旁的舊洗手間前有一處噴泉被稱為「返鄉之水」,它是許多門司港站旅客的另一個記憶。從殖民地歸來的士兵和老百姓曾在這裡喝上踏上家鄉土地後的第一口清水,並洗去蒸汽船的煙塵和旅途的風塵。

门司港站


门司,通往日本和世界的门户

自1891年以来,门司港站一直是连接九州与本州乃至世界的纽带。左右对称的新文艺复兴风格设计,令车站建筑宛如一座宏伟的城门,彰显它一个多世纪以来所发挥的重要作用。车站建成以后,经历了搬迁、更名和翻新,但身为门司在20世纪之交的繁荣象征,它依然历久弥新。

1914年,随着门司港的飞速发展,门司市拆除了旧车站,在更靠近海边的地方建造了一座新车站,并一直保留至今。车站最初名为“门司站”,1942年4月更名为“门司港站”。改名之时,正值连接九州和本州铁路的关门隧道开通。

1988年,门司港站成为日本第一个被指定为国家重要文化财产的车站,现役车站中只有门司港站和东京站享此美誉。


欧洲建筑风格的影响

这座两层木构建筑的外壁看似以石块砌成,其实是采用了灰泥仿石砖施工工艺。坡形屋顶、装饰性铁艺和主入口两侧的壁柱,都属于19世纪中叶欧洲盛行的新文艺复兴风格。这些欧式元素反映了在19世纪晚期至20世纪早期,西方设计对日本建筑师所产生的影响。


昔日繁华的车站

历经6年大规模翻修后,门司港站于2019年重新开放。如今,它既是一座公共火车站,也是20世纪之交时门司独特地位的见证。车站保留了许多20世纪的特色,如售票处曾是头等和二等车厢乘客的候车休息室,里面有豪华的壁炉台和壁炉。位于大厅对面的曾经的三等车厢候车室,现已改建为咖啡厅。车站入口附近的楼梯通向二楼,这里过去是贵宾休息室,还有一个附属的仆人房。贵宾们会享用“みかど(Mikado)食堂”提供的欧式美食,该食堂同时还负责运营餐车。豪华的家具和典雅的内部装饰已成为这座历史悠久的车站的一部分展品。


门司港的往事

门司港站连接了九州陆路与门司港,进而成为连接世界各地的纽带,居功至伟。多年来,数以百万计的人进出于此,其中一些人的故事至今仍广为流传。


池田うた“骄傲之镜”

在门司港站西北翼,挂着一面华丽的大镜子,上方还有一块牌子,向人们诉说着池田うた子(Ikeda Utako)的故事。

1945年8月,第二次世界大战刚刚结束,日本开始从海外撤军。纷纷涌入门司的士兵和市民,需要在门司港站等待好几个小时才能挤上火车。站台上,一位名叫池田うた子的孕妇忽然开始了阵痛,当羊水破裂时,夜幕已经降临,当地所有诊所都已关门。一名车站工作人员毅然背起她3岁大的孩子,把母子俩领到自己家中。在邻居的帮助下,他顺利地帮产妇接生了孩子。池田うた子给新生儿取名为“左门司”。

1971年,成年后的池田左门司将这面“骄傲之镜”捐赠给了门司港站。他希望车站的员工们能通过镜子“看到自己,并为自己的工作感到自豪”。


返乡之水

站台旁的旧洗手间前有一个喷泉,它是许多门司港站旅客的另一个记忆。这处喷泉被称为“返乡之水”,从殖民地归来的士兵和普通民众曾经在这里洗去蒸汽船的烟尘和旅途的风尘,喝上他们踏上祖国土地后的第一口清水。

모지코역


모지: 일본과 세계로 향하는 현관문

 모지코역은 1891년 이래로 규슈를 혼슈, 그리고 세계와 연결해 왔습니다. 좌우 대칭적인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디자인은 문을 연상시키며, 1세기 넘게 모지 항구가 수행해 온 역할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역이 건설된 이래 이전, 개명, 개축되어 왔지만, 20세기 초 모지의 번영을 상징하는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1988년에는 철도 역사 최초로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모지 항구의 급속한 발전에 힘입어 1914년, 모지시는 오래된 역사를 허물고 새로운 역사를 더 바다와 가까운 곳에 세웠고 이 건물이 현재까지 남아 있습니다. 당초에는 ‘모지역’이라고 불렸으나 1942년 4월 ‘모지코(모지 항구)역’으로 개칭되었습니다. 이 명칭 변경은 규슈의 철도를 혼슈와 연결하는 ‘간몬 터널’의 개통과 같은 타이밍에 이루어졌습니다.


유럽 건축의 영향

 목조 2층 구조의 이 건물은 돌로 덮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돌처럼 보이게 만들어진 모르타르로 덮여 있습니다. 망사르드 지붕, 철제 장식, 그리고 정면 현관 옆 기둥은 모두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주류였던 네오 르네상스 건축의 특징입니다. 이러한 유럽식 요소는 서양의 디자인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일본의 건축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줍니다.


과거 번성했던 역

 모지코역은 6년간의 대규모 개보수를 거쳐 2019년에 재개장했습니다. 현재의 모지코역 역사는 공공 철도역이자 1900년대 초 모지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당시 1등석과 2등석의 승객 대합실이기도 했던 매표소에는 호화로운 맨틀피스와 벽난로 등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메인홀 안쪽은 3등석 여객의 대기 공간이었지만, 현재는 카페로 개조되었습니다. 2층에는 과거 신분이 높은 여행객을 위한 특별한 라운지와 그들의 고용인을 위한 별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특별한 여행객들은 열차의 식당차도 운영한 고급 레스토랑 ‘미카도 식당’의 유럽 요리도 대접받았습니다. 그러한 호화로운 가구와 우아한 인테리어는 현재 이 역사적인 역사의 전시물이 되었습니다.


추억과 함께하는 모지코역

모지코역은 모지 항구와 규슈를 육로로 연결하고 넓은 세계와 연결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수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 항구에서 출발하여 이 항구로 돌아왔고, 그중에는 지금까지 구전되는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이케다 우타코와 ‘자부심의 거울’

 북서쪽 동에는 이케다 우타코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플래카드와 장식이 되어 있는 커다란 거울이 걸려 있습니다. 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은 해외에서 군대를 철수하기 시작했습니다. 모지코역은 해외에서 돌아온 사람들로 몹시 붐볐는데, 여기에는 임신 중인 우타코가 있었습니다. 우타코가 승강장에 있었을 때 진통이 시작되며 양수가 터져 버렸습니다. 이미 한밤중이라 진료소는 모두 문을 닫았었기 때문에 역무원 중 한 사람이 우타코의 3살 된 아이를 등에 업고서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이웃의 도움으로 우타코는 무사히 아들을 출산할 수 있었습니다. 우타코는 모지의 은혜를 잊지 않도록 아기에게 ‘모지(門司)’의 한자를 사용한 ‘사몬지(左門司)’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이케다 사몬지의 부친은 1971년 ‘자부심의 거울’을 모지코역에 기증했습니다. 이는 역무원들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역에서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아 기증한 것입니다.


귀향수

 승강장 옆에 있는 오래된 화장실 앞에 ‘귀향수’라고 불리는 음수대가 있습니다. 모지코역을 오가던 사람들을 상상할 수 있는 유구 중 하나입니다. 귀환병과 식민지에서 귀국한 사람들은 이 음수대에서 기선의 그을음과 여행의 먼지를 씻어내고 조국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물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門司港駅


門司:日本と世界への玄関口

門司港駅は1891年以来、九州を本州と、そして世界と繋いできた。左右対称なネオ・ルネサンス様式のデザインは門を思わせるもので、1世紀以上にわたって門司港が果たしてきた役割を反映している。駅が建設されて以来、移転、改名、改築されてきたが、20世紀初頭の門司の繁栄のシンボルであり続けている。1988年には鉄道駅舎として初めて国の重要文化財に指定された。


門司港の急速な発展に促される形で、1914年、門司市は古い駅舎を取り壊して新たな駅舎をより海に近い場所に建て、現在に至っている。当初は「門司駅」と呼ばれていたが、1942年4月「門司港駅」と改称された。この名称変更は九州の鉄道を本州と結ぶ「関門トンネル」の開通と同じタイミングで行われた。


ヨーロッパ建築の影響

木造2階建てのこの建物は、石で覆われているように見えるが、実際は石に似せて作られたモルタルで覆われている。マンサード屋根、鉄製の装飾、それに正面玄関脇の柱はいずれも19世紀半ばの欧州で主流となったネオ・ルネッサンス建築の特徴である。これらの欧州風な要素は、西洋のデザインが19世紀後半から20世紀初頭に日本の建築家に影響を与えたことを示している。


かつて賑わった駅

門司港駅は6年間の大規模改修を経て2019年に再開業した。現在の門司港駅舎は公共の鉄道駅であり、1900年代初頭の門司の役割を具体的に物語る場所でもある。当時1等と2等の乗客の待合所にもなっていた券売所には豪華なマントルピースや暖炉などがそのまま残っている。メインホールの奥は3等旅客の待合スペースだったが、現在はカフェに改装されている。二階には、かつては身分の高い旅客向けの特別なラウンジとその使用人用の別室があった。こうした特別な旅客は、列車の食堂車も運営していた高級レストラン「みかど食堂」のヨーロッパ料理でもてなされた。そうした豪華な家具や優雅な内装は、現在ではこの歴史的な駅舎の展示物となっている。


思い出とともに歩む門司港駅

門司港駅は、門司港と九州を陸路で結び、広い世界とつながる上での重要な役割を担っていた。長年にわたり、何百万人もの人々がこの港から出発し、この港に戻ってきており、その中には今も語り継がれるエピソードもある。


池田うた子と「誇りの鏡」

北西の棟には、池田うた子の話を紹介するプラカードと、装飾が施された大きな鏡が掲げられている。1945年の8月、第二次世界大戦が終わり、日本は海外からの撤兵を開始した。門司港駅は海外から引き揚げてきた人々でごった返していたが、そこに妊娠中のうた子がいた。うた子がホームにいるとき陣痛が始まり、破水してしまった。すでに真夜中で、診療所は全て閉まっていたため、駅員の一人が歌子の3歳の子供を背負いながら、彼女を自分の家まで連れていった。隣人の助けもあって、うた子は無事に男の子を出産することができた。歌子は門司の恩を忘れないように赤ん坊に「門司」の漢字を使用した「左門司」という名前を付けた。


池田左門司の父親は1971年、「誇りの鏡」を門司港駅に寄贈した。これは、駅員達に対する「自分自身の姿を見て、駅での仕事に誇りを感じてほしい」という願いを込めて寄贈したものである。


帰り水

ホームの傍の古いお手洗いの前に「帰り水」と呼ばれる水飲み場がある。門司港駅を行き交っていた人々に思いを馳せることができる遺構のひとつだ。帰還兵や植民地から引き揚げてきた人々は、この水飲み場で、汽船の煤や旅の埃を洗い流し、母国に帰って初めて水を飲むことができた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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